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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Mar 02. 2021

난 그런 이야기 듣기 싫어 1

허언증과 화목한 집의 아이들

“나 그런 이야기 듣기 싫어. 미안하지만 구역질 나고, 이해할 수 없어.”


스물 두 살, 아니면 세 살이었나.


내가 그 말을 들은 것은 홍대역에서 상수역으로 이어지는 긴 상점가의 중간이었다. 타로나 사주를 봐주고 온갖 종류의 악세사리와 옷을 팔고 중간 중간 버스킹 하는 사람도 있고 항상 끝없는 사람들의 무리에 치여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인상이 남아 있었던, 소란스러운 거리.


나는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 같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이 많았으며, 화목한 집안 태생이었고, 그때 기준으로 봐도 잘 사는 편이었다. 부모랑 연락을 왜 하지 않느냐는 말에, 나는 간단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고했고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화제는 그렇게 대화한 뒤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나서, 붐비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사람에 치여 먹기는 싫어-그렇다고 걸으면서 먹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손에 감자튀김을 들고 이런 저런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그곳을 올라가고 있던 차였다. 진지하게 내 부모 얘길 꺼낸 것은 아니었다. 아마, 내가 ‘그런’아버지를 경험했기에 50대 이상 아저씨들만 보면 적의가 솟는다, 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었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약간 수면 위로 꺼냈을 때, 그녀의 반응이 나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프리패스권을 얻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날 그녀의 반응은, 처음 내가 아동학대를 당했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의 그녀의 무덤덤한 반응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 굳어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의문을 나에게 품게 했다. 


중립적인 반응은, ‘그런 쓰레기가 네 아버지였다니 안 됐다’를 내포한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얘가 뭣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지? 에 한없이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변명을 하자면 내가 먼저 꺼낸 건 아니다. 거짓말은 하기 싫었고 가족 관련 이야기를 먼저 물어왔으니까 대답했다. 그녀가 그런 대답을 원하고 그 주제를 꺼낸 것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아마 평범한 대답을 원했겠지. 적당히 화목하고, 적당히 문제있는 집안이라는 식의.


절교를 당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 번 붙어버린,‘귀찮고 역겹고 어두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라는 딱지는 이내 그와 관련없는 주제에도 전염돼기 마련이다. 멀지 않아 사소한 걸 계기로 우리 관계는 끊겼다.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니었다. 다음 주자들은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에 아동학대라는 개념 조차 없던 세대다. 부모에게 맞았다고 하면 ‘네가 부모님께 불효했으니까 맞았겠지. 잘못했다고 빌어’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사람이 절대 다수였다.

(딴 소리지만 지금도 해당(나이든) 세대와 이야기하면 자동적으로 이 반응이다. 맞았어요? 왜? 뭐 잘못했길래? 부모한테 반항 심하고 공부 안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기를 보냈나 보죠? 그렇다. 말 꺼낸 사람 입다물게 만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두통을 일으키는, 고구마성 발언.)


다음 타자는 나를 허언증 환자 취급했다. 들었던 말은 아마도 이것.


“너 진짜 불효자다. 그런 끔찍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있지도 않은 일을 떠벌여, 부모 얼굴에 먹칠을 하다니. 사랑해주시고 길러주시고 헌신하신 부모님께 부끄럽지도 않니?”


다음 타자는 뭐였더라?


“과장하는 거겠지. 100번 잘해주다가 한 번 때렸다고 그러는 거 아냐? 너 부모님에게 그러는 거 아니다. 그러지 말고, 잘못했다고 빌어. 뭐? 절연했다고? 말도 안 돼. 어떻게 천륜을 끊니?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넌 엄청난 빚을 진거라는 걸 모르겠어? 좀 맞았다고 도망친다고?”


그래… 상상력이 어쩌고 하는 말을 들은 다음에는 폭력의 규모를 축소해서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내 앞에서 문을 닫았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풀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건 오랫동안 이어져서, 상담을 받는 데도 장애물로 기능했다. 상담자는 교육받았고 그런 소리를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도(설령 그렇게 생각한다손 치더라도) 나는 쭈뼛쭈볏 눈치를 보면서, 좀처럼 내가 겪었던 일을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그리고 십수년이 지난 최근.


나는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최근 들어 많이 개선됐기 때문에 그런 말을 다시 들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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