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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Mar 12. 2021

약자혐오를 혐오한다

“내 돈 뺏어가는 거지들 보면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요. 내 노력으로 A+를 받아서 노력 안 하는 잔챙이들에게 나눠주는 세상이에요. 왜 모자라고 약한 것들을 도와야 하는지, 소외계층에 관심 가져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 가지 않아요.” 


그 사람은 전문직종에 종사하고, 현재는 한강이 보이는 뷰에서 살고 있는 사람. 그런데 그런 말을 했다. 

일 분, 이 분, 십오 분. 삼십 분. 한 가지 베이스에서 뽑아낸 다양한 표현의 말이 계속됐다. 하지만 요약하자면 이런 말이었다. 소외계층은 내 피를 빨아먹는 거지고, 뱀파이어다.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라는.


나는 그의 말에 분위기가 숙연해지고 누군가는 그의 발언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세금도 상위 20%가 다 내는데 나머지 80%는 거지나 마찬가지죠. 그 사람들, 남의 노력의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거지. 3억 벌면 1억 5천 뜯기지 않나요. 나도 당신만큼은 아니지만 국가에서 세금 떼 가는 거 보면 기가 찹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왜 그렇게 많이 뜯어가야 하나 의문이죠.”


또 한 명은 말했다. “나는 두 사람 만큼 잘 벌진 않아서 비슷하게 느끼는 건 아니지만,  혐오감이 생기는 걸 이해해요. 많고 적음이 있을 뿐, 우리 모두 약자 혐오가 있으니까요.”


불평이 더해졌다.


“상위 1퍼센트가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세금을 냅니다. 결국 99%가 다 1퍼센트에 기생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더 노력한 사람들이 잘사는 게 당연하고, 더 대접받아야 합니다. 안 그런 사람들은 ‘벌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노력이 부족한 거니까. 마찬가지로 노숙자니 미혼모니 하는 소위 약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응당의 댓가를 받은 거라고 생각하고요. 게으르게 살아놓고 삶의 질이 좋기를 바라나요? 뻔뻔하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나는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어보라는 말 이외에는 말을 더할 수가 없었다. 압도되었다. 뭔가를 더할 기운이 없었다. 이런 시각이 만연하다는 것을 책이나 칼럼에서나 읽었지, 직접 내 눈앞에서 확인하는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기운이 빠진 나 말고, 나와 비교적 비슷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사람들의 말이 왜 잘못됐는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노숙자와 이야기도 진솔하게 해봤다, 대학도 사회복지 관련 과를 나왔으며 봉사활동도 다니고 시민단체도 10년 째 후원중이다라면서 ‘효율을 위해 채택한 시장경제의 오류값을 보정해주는 게 세금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한강뷰 아파트는 그의 말을 거의 듣고 있지 않았다. 한강뷰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냥 허공에 대고 다 모르겠고 우선 불쌍하니까 도와!!!라고 외치는 거 같네요. 이런 것도 강요고 가스라이팅 아닌가요?”


다른 사람이 말을 받았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한강뷰 아파트의 말씀이 더 이어졌다.


“하지만 시민단체에 후원도 하시고, 사람이 착해 보이시니 더 말을 이어가진 않겠습니다.”


답정너였다. 그냥  ‘네 말이 맞구요’라는 말을 듣기 위해 이 주제를 꺼낸 것이었다. 다른 의견, 혹은 의견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으려고 말을 꺼낸 게 아니라, “세금을 뜯어가서 가난한 사람을 주는 정부가 잘못됐다. 나는 희생양이다. 열심히 일하고 왜 내돈을 뺏어가냐. 세금 내기 싫다.”라는 발언에, ‘맞다. 당신은 피해자다. 불쌍한 사람이다. 소외계층들은 불쌍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들이다.’라는 맞장구를 듣고 싶어서 꺼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한강뷰 아파트에 살고 계신 그 분의 입에서는 온갖 피해의식으로 똘똘뭉친 문장들만 쏟아져나왔다. 한강뷰에도 살고 계시고 노력한 만큼 보답받았으니까 적당히 만족해도 될 것 같은데, 오히려 본인이 빼앗은 게 더 많았으면 많았을 거 같은데(우리나라가 청렴도가 높거나 부패도가 낮은 나라가 아니고 선진국 궤도에도 늦게 올랐으며 친일 청산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는 본인이 진정한 피해자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화살은 너무나 엉뚱하게도, 약자를 향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말에 동조하거나 침묵했다. 


구역질이 나는 자리였다.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Belief in a just world)이라는 게 있다. 문맥에 따라 유추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 허상의 믿음이다. 인간의 불안이 이끌어낸 ‘우상’의 하나다. 우리의 삶은 부조리의 집합체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쏟아져 들어오고, 거기에 떠밀려 살아가는 걸 우리의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면 내 발밑이 불안해진다. 그러니 삶이 부조리하다는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고해지는 전제가 ‘세상은 공정하고 노력한 만큼 보답한다’는 믿음이다.


과연 그랬던가?


이 논리에 의하면 소외계층이 된 원인은 전적으로 해당자에게 있다. 착하게 부지런하게 살면 아무 탈 없이 잘 살 수 있건만, 궤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한 사람의 역사를 잘 털어보면 모든 점에서 바람직한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FM대로 살려고 해도 한두 가지는 기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점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은 공정하다’는 잘못된 허상의 믿음에 사로잡힌 이들은 스스로가 그렇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한다. 즉, 나는 엄청나게 노력했기에 이와 같은 결과를 일궈냈지만 저 사람은 그렇지 않아. 저 사람은 선택을 잘못하고, 게으르고, 잘못된 성격이나 정신적 결함이 있고, 그래서 저 모양인 거야 하고 말이다. 이는 매우 편향적인 시각이다.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기회를 잡고, 회사의 순이익이 높아지고 하는 것은 해당자가 올바른 사람인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IMF들어서 사업이 순식간에 무너진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뭘 잘못했는가? 갑자기 어머니가 큰 병에 걸리는 바람에 사업에 집중하지 못했다던가, 그 해 수능을 볼 수 없었다던가, 혹은 원치 않는 직업을 지속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잘못이 있었던가? 더 건강한 부모를 만났어야 했단 말인가? 가족에게 치킨을 사 주려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뺑소니 차량에 비명횡사한 가장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 가족은 대체 뭘 잘못했기에, 한 순간에 경제적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단 말인가? 거래처가 수급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큰 손해를 보고,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까지 덮쳐서 문을 닫아야 하는 기업은 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 운이 좋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잘못이 있단 말인가? 속이려고 달려드는 사람을 못 솎아낸 것이 잘못이고, 그래서 마땅한 벌을 받은 것인가? 


그들이 왜, ‘네가 열심히 하지 못해서 그런 결과가 된 거야. 네가 인생을 잘못 산 거야. 네 스스로의 업이야. 네가 잘못한 거야. 벌을 받은 거야. 좀 잘 해 보지. 머리 좀 잘 써 보지. 그랬으면 나처럼 한강뷰 아파트에 살 수 있었을 텐데. 네가 멍청한 탓이야.’

라는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즉, 한강뷰 아파트 거주민 및 그 주변에서 그의 의견을 용납해 줬던 열 명 가량의 사람들은,


근거도 없이

약자혐오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내 인생이 어떤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아마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런 학대가 뭐. 나도 비슷한 일 당했어.(그런 적 없지만 하는 말) 하지만 이렇게 잘나졌잖아? 네 극복 노오력이 부족한 거야. 네 노오력이 부족한 걸 남탓하지 마.”


사실, 그 한강뷰 거주민은 실제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극장이니 하는 프로에 나와서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 이해 안 돼요. 힘들면 노력해서 극복하면 돼지. 왜 그걸 못해?”


나는 그의 주변에서 그의 말이 맞다고 동조하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한강뷰는 너무 오랫동안 서민들과 멀어져서, 돈 버느라 다른 것들에 대한 감수성을 다 잃어버려서 괴물이 되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의 주변에서 맞장구를 치던 사람들은, 그렇게 성공하지도 부를 거머쥐지도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보자면, 한강뷰와 비교해서 강자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전부 약자였다.


당신들도 약자인데 왜 약자를 혐오하는 거지? 왜 모두에게 약자혐오가 있다고, 스스로의 편향된 인식이 마치 상식적이며 누구나 하는 본능적인 생각인 것처럼 구는 거지?


주도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니 한강뷰만 문제이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을까?


마틴 맥도나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쓰리 빌보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1980년대였나? 갱을 소탕할 때 나온 법이 있다. 갱단의 일원이었다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친구인 갱이 총이나 칼을 휘둘렀다면, 설령 내가 모르는 일이더라도, 설령 내가 길 건너에서 사건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그 법에 따르면, 죄가 있다. 애초에 그 갱에 들어간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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