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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3. 2022

개로 길러진 아이4

아동 학대 소설

서준씨, 이리 좀 와 보세요.


쳇바퀴는 몇십 걸음의 가속이 붙어야 소리를 내며 신나게 돌기 시작한다. 식사를 해도 몇 십 분이 지나야 뇌로 전달이 된다던가. 손해는 사건이 일어난 후 천천히 실체화하기 시작했다. 조 지부장은 서준의 일처리 능력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웬만해서는 얼굴에서 진심과 거리를 둔 미소를 빼놓지 않았기에 말을 꺼낼 때는 어떤 주제로 그를 부르는 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내가 어제 낸 서류 검토를 해 봤는데, 이런 방향으로 작성을 한 건 참 좋다고 봐요. 그런데.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식, 원래 있던 직원이 사용하던 거 있잖아요. 그거 한 번 찾아봐요. 이런 오래된 서식을 무턱대고 사용하면 안 돼죠.


아니, 이 서식이 맞았다. 이대혁 과장이 알려줬던 바로 그 폴더에 있던 서식이고, 서준의 입사와 동시에 퇴사 박스에 물품을 잔뜩 얹고 서글픈 미소와 함께 사라진 전임자가 사용했던 폴더였다. 그가 사용한 서식이라는 점은, 서준의 입사 전까지 주별로 쌓여 있는 엑셀 파일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맞다고 설명해도 조민채 지부장은 믿지 않았다.


그런 것이 점점 늘어났다. 다른 직원은 되지만, 서준은 안 되는 것들. 지혜 씨나 이 과장이나 다른 직원들이 일하던 중간에 화장실, 탕비실에서 15분 20분 시간을 보내는 건 괜찮았지만, 서준은 5분도 용납되지 않았다. 새로운 얼굴이라고 말하기에는 시간이 지나 있었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되었나 싶어 ‘화장실 좀 다녀온다’고 보고까지 하고 갔다 왔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김에 담배도 한 대 피고 왔다. 그러자 조 지부장이 반말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그러더니 이대혁 과장을 불렀다. 아랫사람 관리를 잘 하라는 뜻이었다. 이 과장은 이쪽을 뜨앗하는 얼굴로 바라보더니, 곧바로 지부장에게 날아가 질책을 들었다. 애초에 본인 잘못도 아니니 대표도 처음에만 보란듯이 목소리의 톤을 거칠게 했을 뿐, 몇 초도 안 되어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이후 둘은 담소라도 하는 것처럼 정다운 얼굴로 변했고, 훈훈한 마무리가 된 듯 이 과장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으며, 지부장 역시 농담을 던졌다. 이대혁 과장은 옆머리와 뒷머리가 짧은 크롭컷이었다. 윤기가 차르르 흐르고 깔끔한 인상에 도움이 된다는 면에서 두 사람은 길이만 달랐지 머리 스타일 선택마저 어딘가 닮아 있었다. 서준은 갑갑해져서 사무실을 말도 없이 나왔다. 함부로 나가면 조 지부장의 비난이 기다릴 것을 알았지만, 도무지 두 사람이 있는 장소에 머무를 수 없었다. 숨이 막혔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숨을 곳이 없어 옥상에 올라, 물탱크와 벽면 사이에 빈 공간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와도 발견되지 않을 위치였다. 어머니와 살면서 좋아진 기술은 어딘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리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서준을 원해서 낳지 않았다. 원치않는 시기에 애가 들어섰고, 병원에 가니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이번에 중절수술을 하면 포궁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 뭐 그런 말로 겁을 줬다. 며칠 간은 방황하고 울던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와 갈라서지 않고 애를 낳기로 했다. 지금이야 애 둘이 달린 게 새출발을 할 수 있는 조건 중의 하나로 편입되었지만(물론 그래도 어려운 조건인 것은 맞다.) 그때는 불가능으로 정의되어 있었다. 나를 낳기로 하고 나서 그녀가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 서준은 중얼거리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래로 향하던 기분이 멈추기도 했다.


널 어떻게 낳았냐면.


보통 어머니들이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과 내용은 천편일률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해져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방영했던 시트콤 내가 너희 엄마를 어떻게 만났냐면(How I met your mother)처럼 장황하면서 결론 없지 않다. 로스트(Lost)처럼 질문만 던지다가 허무하게 소멸하지도, X-FILE처럼 아이 원 트 빌리브, 하며 시공을 초월한 눈동자가 되지도 않는다. 어려운 질문이 아니니 답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또한 3세가, 5세가, 전연령가, 청소년가 등으로 상대의 나이에 맞게 편집된 버전을 미리 각색해 두었다가 써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통적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나와 네 아버지는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 사랑의 결실이자 성취로서 네가 세상에 온 거다, 넌 내게 보물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서준에게 그런 맞춤형 대화를 제공할 이유나 의지가 없었다. 그것도 애정이 있는 아이에게나 하는 행동이다. 


서준은 자신보다 세 살 많은 형에게 그녀가 어떤 문장들을 읊고, 감동하여 어머니에게 껴안긴 형을 그녀가 가만히 쓰다듬고 있던 평화로운 장면은 기억하지만, 똑같은 일이 자신과 어머니 사이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어머니가 아들과 딸을 차별하기도 하고, 한 아이를 막 대하기도 하고, 똑같은 아들인데 한 명은 정식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떨거지나 서자인 것처럼 취급하고. 한쪽에는 너그럽고 한쪽에는 모질고. 꼭 현대만의 일은 아니다. 몇 백년도 전부터 전통처럼 반복되어 왔던 일이다. 일본에는 애완용 자식과 착취용 자식이라는 속어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 분석 글을 커뮤니티에 올린 적도 있었다. 자식이 여럿 있을 때 그 중 한 명을 사랑하게 되면, 나머지 아이는 덜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걸 넘어서 오히려 미워진다던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돌아갈 에너지와 자본과 유산같은 걸 빼앗아가는 못된 놈이라 구박하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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