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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의 장례식

by Mynameisanger

https://www.youtube.com/watch?v=kB0I82GaQyY

오늘의 데모곡입니다.


애비는 아직도 살아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장례식을 기다린다. 그의 장례식이 그냥 지나가면 어쩌나 고민도 한다. 그 장례식장에 찾아가 그 인간을 '친구'나 '지인'이랍시고 알고 지냈던 모든 사람들에게 애비의 정체를 까발리고 싶다. 그 인간은 체면이 중시했기에 주변에서 상당한 호인으로 통했다. 화를 잘 내지도 않고, 밥을 먹으면 본인이 무조건 결재하고, 불리한 일이 있어도 그럴 수도 있지 털어버리고, 남이 본인에게 손해를 끼쳐도 허허 웃었다. 장례식에 올 정도라면 그의 연기를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그의 밑바닥은 보지 못했다. 수조 안에 가라앉은 이끼가 어느 정도 두께인지도, 그게 얼마나 썩었는지도 보지 못했다.


그는 좋은 사람인 척 하며 남에 대한 화를 적립했다. 본인 성격대로 살았다면 적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왜인지 좋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원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바른 말조차 하지 않고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렇게 하루동안 제 머리 위로 쌓아올린 짐은 누군가가 받아줘야 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자신의 나이의 절반도 되지 않고, 키도 허리춤에 불과한 어린 여자아이였다. 그는 온갖 핑계를 만들어내는 데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이미 화가 난 채로 집에 돌아왔지만, 그 이유를 빠르게 찾아낼 수 있었기에 여자아이와 다른 가족들은 그게 외부에서 가져온 짐인지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가 주로 사용한 것은 ‘아버지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다’였다. 권위라는 것은 보이지 않고, 손상되기 쉬우며, 자의적인 해석의 영향을 받는다. 그가 현관에 들어오는 소리가 나자마자 제 방 혹은 거실에서 튀어나가서 배꼽인사를 하지 않으면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퇴근 시간도 일정하지 않은 그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완벽한 인사를 하기 위해 여자아이는 귀가 비인간적으로 밝거나, 아예 현관 앞에서 계속 생활을 해서 그가 들어오기 위해 내는 기분나쁜 잡음이, 데시벨이 그리 크지 않은데도 곧바로 알아차려야 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여자아이의 현관 앞에서의 삶이었다. 그게 그렇게 될 리가 있나. 중세 시대 집사도 아니고.


물론 사람은 반복되는 고문에 초능력을 개발한다. 여자아이는 소리가 들리면 무엇을 하던 중이든 재빠르게 마무리하고 현관 앞으로 튀어나갔다. 다른 집 현관이 울리는 소리거나 바깥에서 난 소리일 때는 긴장을 풀었다. 헛걸음은 있었지만 대응 속도는 빨라졌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빠르게 튀어나가 인사를 한다고 해서 그가 하루 종일 착한 사람 연기를 하면서 쌓은 화가 풀릴 리가 없으니까. 그는 인사하는 자세가 잘못됐다, 인사하는데 웃지 않는다, 인사를 크게 안 한다, 너무 크게 해서 사람 민망하게 한다, 인사하는 데 표정이 밝지 않다, 너무 밝아서 비웃는 것으로 보인다 등 스트라이크 존을 끝없이 좁혔다. 그를 만족시킬 방법이 없고 자신이 비난받지 않을 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엔 여자아이는 너무 어렸다.


장례식장에 가서 까발릴 것은 물론 그가 여자아이를 상대로 몇 천번 몇 만번이나 반복했던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때로는 교묘해서 학대라고 이름붙이기도 애매하지만 어떨 때는 학대라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로 발전했던 그의 잔혹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물론 학대는 잘못된 것이지만, 나의 손톱만한 상처가 남의 패혈증보다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게 사람이다. 뭔가를 까발린다면 자신들에게 손해가 될 만한 것이어야 공감받을 수 있다. 나는 그 인간이 앞에서는 신나게 착한 사람으로 포지셔닝 했지만 사실 거기에는 진실성이 없다는 사실, 잘못을 용서받았다고 그 인간을 존경했지만 사실 그런 일 따위는 일어난 적도 없다는 사실, 그는 오직 자신의 이미지를 구하기 위해서 그런 척을 했을 뿐 마음으로부터 따뜻함을 품은 적도, 누군가의 잘못을 보듬어 관용을 베푼 적도 없다는 사실에 중점을 둘 거다.


학대를 당한 사람들은 자주 삶을 끝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삶을 스스로의 손으로 끝내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수를 생각한다. 그 인간의 장례식에 가서 말할 것들을 생각한다. 그 인간과 한패이며 공범자였던 애미가 날 끌어내릴 테니 유튜브에 올리고 주소를 돌릴까, 아니면 몇 초 만이라도 힘껏 소리질러 그의 가식적인 미소와 앞뒤가 맞지 않은 행동에서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의심할 거리를 던져 줄까. 아직 준비는 끝나지 않았고 나는 충분히 연습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례식이라는 소식만 들려 봐라. 고요히 좋은 사람으로 죽게 두진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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