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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Jul 13. 2022

꽃노래

엄마가 되고 보니

<진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최민형은 키가 작고 앞니가 토끼처럼 튀어나와 교정기를  같은  남자애였다. 내가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자기가 경주 최씨 충열공파 31대손인데 28대손인 나에게 증조할머니라고 쫒아다니며 놀려댔기 때문인데, 어쨌든 짓궂은 장난꾸러기였던  애에게 반한  '꽃노래' 때문이었다.


 작지만 현란한 몸짓을 취해가며 연주한 그 곡은 도입부터 몽환적이고 화려했다. 피아노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입구 옆 피아노에서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 연주 중이었다. 특히 클라이맥스 부분은 어린아이의 심장을 심하게 요동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침 곡을 끝낸 그 아이는 넋을 놓고 곡에 취한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멋쩍은 듯 가방을 챙기고 서둘러 학원을 빠져나갔다.


증조할머니라고 귀에 박히도록 놀리며 따라다니던 그 아이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아이 덕분에 명곡집에서 '꽃노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열심히 치는 곡이 되었다.


아이클레이로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딸아이를 등지고 오랜만에 펼친 명곡집에서 꽃노래를 연주했다. 손도 예전 같지 않고 감에 의존하여 겨우 곡을 쳐내려 가는데 그때와 변함없이 아름다운 곡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후반부에 곡의 분위기가 변하면서 고음의 클라이맥스를 건반에 터치하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봤을까? 엄마는 내가 피아노 학원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콩쿠르 같은 것도 나가본 적 없는 나인데.



그 시절 엄마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었다. 엄마는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삶이 치열했을 것이고, 나에겐 고작 나를 증조할머니라 놀리던 남자아이가 성가신 게 전부였을 테니.


다시 한번 클라이맥스의 건반을 때리며 약간은 분하고 서럽기도 한 마음으로 글썽이는 눈물을 챙겨가며 곡의 마무리를 했다. 순간 민하가 마무리되어가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아, 좋다!"라고 말해주었다.


아직도 오빠의 장가가 걱정의 전부인 엄마는 피아노 학원비를 깎아가며 보내던 나의 어린이를 떠올려본 적이 있을까? 남들보다 훨씬 빨리 진도가 나간다며 시기를 샀던 총명했던 딸내미를 자랑스러워한 적이 있을까, 작디작은 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게 아름다운 꽃노래의 클라이맥스를 연주하던 어린이가 엄마의 추억에 저장되어있지 않은 것이 안쓰럽고 서러운 밤이다.


엄마가 되고 보니, 이런 게 다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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