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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Oct 20. 2023

낯선 아줌마를 따라 마트에 간 나의 어린이

엄마의 마음이란 게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애 맞지?"


아침 등굣길에 딸아이가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언뜻 초등 저학년으로 보이는 귀여운 아이를 내가 제일 싫어할 게 뭐가 있을까 싶어 머뭇거리다 그 아이를 자세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아이다. 길 걸어가면서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아이!"


나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았다. 사줄 계획도 없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는 엄마를 포기하는 수준에 이르러 불만이 없지만 이제 갓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은 아직도 내게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는 중이다. 아무리 졸라봐라 내가 사주나.


학교 정문을 50m쯤 남겨두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터벅터벅 걷는 꼬마가 보였다. 가방 지퍼도 열려있는 게 거슬렸다. 닫아주고 싶긴 한데, 낯선 사람이 갑자기 다가가면 안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마음을 접으려는 찰나.


옆집 아이다. 자세히 보니 서로 종종 왕래하며 지내는 옆집 아들이었다. 귀엽고 착한 그 아이를 내가 잘 알지, 가까이 다가가 가방 지퍼를 닫아주었다.  "아줌마가 지퍼 닫아준 거야!"라고 말하며 내가 아는 사람임을 알렸다. 그리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아들, 학교 갈 때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면서 가는 거 정말 안 좋은 거야! 아줌마가 엄마한테 이를까? 아님 지금 바로 끌래?"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내 자식도 아닌데 내가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옆집의 평소 인성을 볼 때 이런 일을 알고 언짢아할 사람들은 절대 아니라 믿었다. 


"아, 들켰다.." 

옆집 꼬마는 이렇게 말하더니 얼른 스마트폰을 끄고 교문을 향해 뛴다. 귀여운 녀석. 내 자식 같아서 한 행동인데 내가 너무 오지랖이었나 싶다가 불현듯 내 어릴 적 사건이 뇌리를 스친다.




"얘야, 이거 진짜 몸에 안 좋은 건데, 이거 먹다간 나중에 커서 암에 걸릴지도 몰라."


생라면을 입에 오물오물 씹으며 걷는 내 등 뒤에서 낯선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거는 이 상황에 경계심이 생긴다. 아주머니는 내게 다정하게 물었다.


"이게 그렇게 맛있어?"

"네.."

"이거 여기까지만 먹는다고 약속하면 아줌마가 맛있는 것 사줄게."

"네?.. 아.. 괜찮아요."


괜찮다고 말했지만 아줌마를 따라가고 싶은 욕망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 시절, 마트에서 먹고 싶은 과자를 고를 수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너무 기쁜 일이었다. 누가 사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때 나는 유괴에 매우 취약한 초등학생이었다.


동네에는 농협이 있었고, 농협 지하에 하나로마트가 있었다. 내가 걷고 있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트였다. 나는 아주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내려 갔다.


'따라가도 될까? 모르는 사람이 사주는 거 먹어도 될까?'


내 표정을 눈치챈 아주머니가 말했다.


"걱정 마, 아줌마 진짜 나쁜 사람 아니야. 나는 정말로 예쁜 네가 이 생라면 안 먹었으면 좋겠어서 그래, 세상에 얼마나 맛있는 과자가 많은데 건강에 나쁜 생라면을 먹니? 이거 계속 먹으면 얼굴에 뭐도 나고 못생겨질 텐데? 앞으로 절대 이거 안 먹는다고 약속할 수 있니?"


과자에 혹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괴범이 자기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진 않겠지. 그렇지만 이 아줌마는 어쩐지 믿음이 간다.


마트에서 왕꿈틀이 같은 젤리와 과자 두어 개를 손에 들고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들고 온 과자들을 계산해 주었다. 나는 그 과자들을 엉거주춤 받아 들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생라면 먹지 않기로 한 약속, 꼭 지키는 거다."


그 아주머니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주머니는 엄마가 보낸 천사일까?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일까? 대체 왜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었을까? 한동안 나는 그 아주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생라면을 먹고 싶어도 꾹 참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나를 키운 사람은 어른이다. 나는 아직도 생라면을 볼 때 번개처럼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귓등을 스치는 기이한 경험을 한다. 얼굴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머니가 나에게 베푼 친절과 따뜻한 마음은 30년이 넘은 지금도 생생하고 따뜻하게 내 가슴에 스며있다. 엄마가 나를 돌보지 않았던 시간에도, 부모가 아이를 살피지 못하는 허술한 시간에도 나는 좋은 어른에게 길러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 진다.


"엄마, 정말 잘했어."


이렇게 말하고는 교문 안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딸아이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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