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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Feb 25. 2024

살찌지 않는 뷔페

1시간 안에 마음껏 읽으세요, 북buffet 입니다.

복직 후 새로 발령받은 부서는 대학도서관 건물에 위치해 있다. 사무실을 벗어나 1분만 걸어도 수만 권의 도서에 접근할 수 있으니 뜻밖에 책부자가 된 기분이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어도 되는 부자.


이 책은 다 내 책이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점심시간이 되면 서걱서걱 걸어 책뷔페로 향한다.


적당히 살을 뺀 이후, 더 이상 체중을 늘리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다. 직장에서 먹는 점심이 얼마나 나를 살찌웠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이제껏 나는 일부러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돈을 써 가면서 나를 살찌워온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제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점심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호주머니 안에 에너지바나 고구마, 삶은 계란과 같은 간식을 넣어 열람실로 향한다. 수많은 책 중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를 때의 느낌은 마치 백화점에 걸린 옷을 다 입어보라고 허락받은 기분이다. 페이지를 펼쳐 넘기면 단단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조언이 나를 덧입힌다. 간이 적당한 국밥을 한 술 떴을 때와 다를 바 없는 포만감도 함께.


4층에는 신간을 포함한 문학, 에세이 분야의 도서가 가득 꽂혀있다.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신간코너에서 애피타이저로 고를 책을 스캔하고, 읽고 싶었던 혹은 시선을 끄는 책이 없나 점검한다. 가령 신간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보이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어그로를 잔뜩 끈 책이 눈에 띄면 한동안 머물러 그 책을 뒤적인다. 대여하기로 결정하거나, 훑어보다 내려놓을지 어떤 방식으로든 맛있게 책을 섭취하고 그다음 코너로 이동한다.


대형 도서관의 장점은 아주 오래된 책 (오래됐다는 것은 많은 것이 말해준다. 글씨체가 아주 촌스럽거나 책의 표지가 너덜너덜해졌거나 종이의 색이 아주 바랬거나.)부터 최근에 출간된 책까지 한 장소에서 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따끈한 신간이나 재쇄를 거듭한 베스트셀러만 볼 수 있다. 소규모 도서관도 담당자들이 엄선한 책만 볼 수 있는 반면 도서관의 책은 모든 작가들의 역사가 서려있다. 분류된 장르 안에서 작가의 이름 순으로 꽂아진 책을 바라보면 한 작가의 역사가 보인다.


원래 온라인 서점의 미리 보기 기능을 애용하던 나로서는 종이책을 만져보고 원하는 페이지를 손으로 가늠해 읽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갔을 때는 서가의 책들을 만져보고 펼쳐보느라 귀중한 한 시간을 다 쓰고 말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 적은 처음이다. 도서관에서 머무는 시간에 나는 신데렐라가 되고 만다. 두 번째 날부터는 스스로에게 원칙을 정했다. 머물러 읽을 책을 고르는 시간을 최소 15분 내로 하고 사무실로 복귀할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알람을 맞춰두기로 한 것이다.


간혹 점심약속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점심시간이면 자그마한 간식을 들고 서가로 향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직장에게 낮시간의 전부를 내주지 않았다는 쾌감과 점심약속을 잡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책에 둘러싸여 마음에 양식을 먹었다는 성취감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내일도 책 뷔페로 향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릿속이 고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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