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시드니 전집입니다.
시드니에 전집 차리면 잘 될 것 같지 않아?
눈을 반짝이며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주이를, 진혁은 싱겁게 모른 채 했다. 축축한 봄비가 내리는 어느 주말 오후였다. 으레 비가 오는 날이면 전이 당기기 마련이다. 주이는 남편이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김치전을 접시에 정갈하게 담은 뒤 나무젓가락과 함께 식탁에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조르듯 물었다.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이번 설에 전을 부치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시드니에는 네네치킨도 있고 신전떡볶이도 있는데 어째서 김치전, 해물파전을 파는 전집이 없을까?'
그래서 말인데, 내가 시드니에 포장 전집 차리면 대박 날 것 같지 않아?"
진혁은 대꾸도 없이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막걸리를 양은잔에 따랐다. 주이는 진혁의 무반응에 보채듯 말을 보탰다.
"위대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어. 똑같이 생각하면서 다르게 살기를 바라면 안 된다고. 난 이제까지와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 부의 추월차선이라는 책에서 그러는데, 부자가 되려면 세상에 없는 유일무이한 걸 해야 한대. 시드니에 전집, 세상에 없는 유일무이! 내가 해보면 어떨까? 어때? 자기도 저번에 호주 좋다고 했잖아."
"호주 좋지, 좋긴 한데... 난 회사는 계속 다녀야 해, 휴직 중인 자기가 좀 알아보던가."
진혁은 김치전을 오물거리며 귀엽다는 눈으로 주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맛있는 김치전을 얻어먹은 대가로 쓴 선심이었다.
'어라?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란 말은 안 하네?'
주이는 진심인지 농담인지 분간이 안 가는 그의 말을 긍정신호로 해석했다. 희망을 꽉 채운 눈빛이 반짝였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것도 잠시, 진혁은 곧바로 단서를 달았다.
"주식 대박 나면."
"뭐? 참나, 그럼 못 간다는 말이잖아?"
본디 '내가 팔면 오르는 게 주식'이라고 했다. 수 년째 물려서 꼭 쥐고 있는 주식이 갑자기 대박 날 리 있나. 주이는 찡그린 표정으로 진혁을 째려봤다. 그는 막걸리를 원샷했고 주이는 하이볼잔을 손에 쥐었다. 막걸리는 뒤끝이 나빠 싫다는 주이를 위해 진혁이 직접 제조한 하이볼은 잔 속 얼음이 녹으며 '딸가닥' 소리를 냈다.
주이는 하이볼 한 모금에 김치전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새콤한 레몬즙이 김치전의 바삭함과 잘 어우러졌다. 일부러 오징어가 몰려있는 부위를 젓가락으로 발라 남편 입에 '아' 넣어주고 다시 물었다.
"주식 오르기를 어느 세월에 기다려? 그럼 자기는, 일단 돈만 있으면 찬성하는 거야?"
"응. 돈만 있으면 찬성. 근데, 돈 있어?"
"은행에 넘쳐나는 게 돈 아니야? 어차피 평생 회사 다닐 건데 가불 하지 뭐."
"마이너스통장?"
"응. 필요하면... 퇴직금도?"
"에휴, 사업이 뭐 그렇게 쉬운 줄 알아? 그러다 망하면?"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더라? 잘 안 되면 뭐... 다시 죽어라 회사 다녀야지, 나에겐 월급 보험이 있으니까."
진혁은 주이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피식 웃고는 막걸리를 한 잔 더 따랐다.
"휴직기간이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한 번 알아봐. 혹시 알아? 진짜 우리 와이프가 대박이 날지, 솔직히 자기 김치전 진짜 맛있긴 해."
"그치? 내 김치전 진짜 맛있지? 호주사람들도 깜짝 놀랄 맛이지? “
"풉... 그래. 더 없어?"
"더 있지, 잠깐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엉덩이를 뗀 주이가 후다닥 인덕션으로 향했다. 기름 뺀 참치와 튀김가루, 묵은 김치와 채 썰은 오징어를 물에 다닥다닥 저었다. 콩기름 두둑이 부어 달군 팬 위에 반죽을 부으니 '챠아!' 소리가 났다. 고소한 기름과 김치전 향기가 집안 곳곳을 금세 물들였다. 기름에 지글지글 익는 전을 얇게 펴 뒤지개로 꾸욱 누른 주이는 히죽거리며 시드니행 비행기에 탑승한 자신을 상상한다.
'다시 시드니에 갈 핑계가 생겼어, 내가 마음먹은 건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