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이버링 Oct 01. 2024

이건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최주이가 행복할 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네, 이젠 내가 가르치다가 사이만 나빠질 것 같아서, 아무래도 수학학원을 보내야지 싶은데, 학원비가 너무 비싸. 벌기는 버는데 맨날 다 어디로 가는지 원."


주이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 모 교수님이 다 아껴도 아이들 교육비만은 미래를 위한 투자니 아끼지 말라고 했다. 그런 돈 아끼면 애들 다 크고 나서 후회한다나 뭐라나, 교육비를 안 아끼려면 다른 걸 아껴야 하는데,

주이는 새 옷 한 벌 없이 최근 두 계절을 보냈다. 일주일에 두세 번 하던 외식도 한 번으로 줄였고, 식탁은 단출해졌다. 아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어느 날, 치킨 한 마리를 손에 들고 귀가한 진혁을 주이는 현관문 앞에서부터 타박했다.


"요새 치킨값이 얼만 줄 알아? 안 그래도 애들 교육비 때문에 허리띠 졸라매고 있는데, 애들 다 자는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치킨이야!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이제부터 자기가 돈 관리해!"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려 사 왔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며, 안 그래도 발그레한 진혁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밀키트 가격이 외식비와 맞먹으니 한 푼이라도 아껴 보려고 냉장고 속 재료와 부모님이 주신 고등어에 가까스로 저녁을 해결한 날이었다고 주이도 일갈했다. 무려 2만 3천 원이나 하는 돈을 치킨값에 써 버린 진혁을 원망했다. 곧이어 그녀는 늘어난 아이들 사교육비로 빠듯해진 살림을 아느냐고 진혁에게 쏘아붙였고, 술이 늘어지게 취한 진혁은 결국 선을 넘고 말았다.


"와... 최주이, 너 이런 애였어? 맨날 재테크 책 보고 공부 좀 한다더니, 돈도 안 나오는 책은 뭣하러 보냐? 나도 특근에 야근에 힘들거든? 이깟 치킨 한 마리 샀다고 현관문 열자마자 사람을 병신 만들고, 에잇!"


그는 손에 든 치킨을 신발장 구석에 내동댕이 쳤다. 남의 집에 갔으면 환영받았을 후라이드 치킨 냄새가 주이의 코를 찔렀다. 씩씩대며 방에 들어간 진혁은 한참 동안 인기척이 없었다. 팔짱만 끼고 있던 주이는 조용히 방문을 열어 어두운 방 안을 살폈다. 진혁은 양말만 벗은 채 딸아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새우처럼 간신히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그렇게 화내고도 잠이 오나? 어휴... 어차피 내일이면 화낸 거 기억도 못하겠지, 내가 못 살아.'


주이는 신발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치킨봉투를 식탁 위로 가져왔다. 치킨은 안전했다. 봉투가 따뜻한 것을 보니 튀긴 지 한 시간도 안 된 게 분명했다. '꼬르륵...' 아이들이 먹고 남은 음식으로 저녁을 때운 주이의 뱃속이 요란하게 허기를 알렸다. 의자에 앉아 치킨 봉투를 살펴 날개 한 조각을 꺼내 물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맛있네...어디꺼야?‘ 반사적으로 봉투를 안팎을 뒤졌으나 종이봉투에는 명함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진혁이 술집에서 안주로 먹은 통닭이 맛있어서 포장해 온 모양이다. 허기와 허전함이 치킨 한 조각으로 해소되는 그 순간, 주이의 마음속에는 미안함과 서러움이 밀려와 코끝이 시큰거렸다.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돈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애꿎은 남편에게 푼 자신이, 닭 날개를 뜯고 있는 스스로가 어처구니없어 웃음도 나왔다. 고요한 거실에 치킨 씹는 소리가 왈츠처럼 울려 퍼졌다. 치킨무를 입에 넣고 오도독 씹었다. 서너 조각으로 적당히 허기를 달랜 뒤 남은 치킨을 밀봉해 냉장고에 넣었다. 내일 에어프라이어에 데워서 아이들 간식으로 주면 좋아할 것이다. 캔콜라를 따 꿀꺽꿀꺽 마신 뒤 ’크으‘ 소리를 내며 창문을 열어젖혔다. 더위가 한풀 꺾인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와 시원한 가을바람이 창문 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휴... 이건 내가 생각했던 인생은 아니야...‘


컴컴한 바깥을 응시하며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남편과 돈 때문에 다툰 적은 처음이었다. 아이들의 키와 함께 불어난 사교육비는  맞벌이 부부의 소박한 예산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영어학원비 35만 원과 수학학원비 25만 원을 합쳐 총 60만 원의 지출이 추가됐다. 학원을 보내기로 결심했을 때 진혁은 "내가 좀 안 쓰고 안 먹으면 되지."라고 말하며 적극적인 교육열을 내비쳤다. 하지만 오늘, 60만 원을 우습게 봤다가 현관문 앞에서 주이에게 면박을 당한 것이다. 귀하게 자랐을 큰아들을 현관문에서부터 면박 준 사실을 시어머니가 알게 된다면 며느리인 자신을 얼마나 원망할지, 주이는 이곳에 있지도 않은 시어머니 생각에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빠가 주식투자 실패했을 때 가훈처럼 읊었던 엄마의 명언, '돈이 밉지, 사람이 밉냐.'를 되뇌며 잠시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다. 배가 불러 잠자긴 글렀다. 주이는 얼마 전 선물 받은 재테크 책을 꺼내 들었다. 아까 진혁이 술김에 한 말은 진심이었을까를 생각하며 왼팔은 턱에 괴고 오른팔로 책날개를 열어젖혔다. 저자는 M투자기업의 대표이며 초중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무료강연을 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책 내용을 보니 프롤로그부터 심상치 않았다. 자녀의 사교육비를 모아 나중에 자녀가 어른이 됐을 때 한 번에 줄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진다. 사교육비를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면 그 돈이 무려 수 억 원은 될 거라 했다. 주이는 설마 하며 입술을 오므렸고, 계산기 앱을 꺼내 60만 원을 12년으로 곱했다.


60만 원 X 12개월 X 12년= 8,640만 원


헉소리가 났다. 복리이자까지 더하면 1억에 육박하는 돈이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기존 사교육비에 추가된 사교육비 60만 원을 더해 12년을 저축한다면 정말 수억 원이 되겠구나. 하지만 말이 쉽지, 아이들을 학원도 안 보내고 어떻게 12년간 버틸 수 있겠는가, 저자에겐 자식이 없나? 주이는 궁금해 찾아보려다 귀찮아 그만뒀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구나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꼭 읽어 봤으면 좋겠어. 지금 네 시기에 꼭 필요한 책이야.“


입사 때부터 주이를 친동생처럼 챙겨준 회사 선배 P로부터 받은 책이었다. 읽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다는 선배의 진심을 보물찾기 하듯, 한 장 한 장 성의 있게 읽었다. 열 페이지쯤 읽었을 때, 어떤 문장 하나가 주이의 시선을 멈춰 세웠다.


'해가 떠있는 아름다운 시간과 맞바꾼 당신의 월급, 어떤 가치와 교환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시간은 곧 목숨인데 말입니다.'


한 사람의 시간은 곧 목숨이라는 말,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주이는 해가 떠있는 일곱 번의 낮 중에서 다섯 번은 오피스 형광등 아래에서 일했다. 모니터가 내뿜는 빛을 쳐다보고 에어컨이 뿜어낸 공기를 마시며 목숨과 월급을 맞바꿨던 것이다. 대체  그 목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주이는 저자가 시키는 대로 노트에 대략의 수입과 지출을 적어 보았다. 또 저자는 목숨을 바꾼 월급 중에서 생계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쓴 돈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해 보라고 했다. 수입은 단 두 곳, 남편과 주이의 월급뿐이고, 대출 원금과 이자, 공과금과 보험료, 연금, 적금 등이 고정지출로 빠져나간다. 신용카드 이용내역에는 월 15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두 아이의 사교육비와, 기름값, 외식비, 통신비 등이 적혀 있었다.


"휴... 이게 뭐야, 날 위해 쓴 건 고작 커피값 밖에 없네."


주이가 중얼거리기 무섭게 저자는 행여 커피나 화장품을 사는데 쓴 돈을 자기 자신을 위해 쓴 돈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녀는 눈을 희미하게 떴다. 이 책은 재테크 책이 맞는가. 저자가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갔는지 의아해하며 공연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시간은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 나를 위해 쓴 돈이란 게 뭔데?'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이란 자신을 즐겁게 할 목적으로 쓴 돈이라고 친절한 예시와 함께 적혀 있었다. 배울 점이 많은 회사 선배와 마신 커피값은 자신을 위해 소비한 돈이고, 출근길 피로를 쫓기 위해 카페인에 투자한 것은 생계를 위한 지출일 뿐이라고 했다. 만약 자신을 위한 일이 뭔지도 모른 채 살았다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꼈던 순간을 3가지 정도 적어보라고 했다. 주이는 순순히 노트 한편에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3가지 순간'이라고 적었다. 고민스러웠다. 행복한 순간은 많지만 ‘가장’이라는 부사가 고민의 난이도를 높였다. 일단 떠오르는 생각을 주워 담아 3번까지 써내려 갔다.


1. 고등학교 때 사교육 없이 수학 100점을 맞았을 때

2. 누구의 도움 없이 내가 번 돈으로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을 때

3. 진혁과 결혼했을 때   소중한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혹은 그 시절의 나로 되돌아 가 가졌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라고 했다. 3번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니 1번과 2번의 기억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기로 했다.


사교육 없이 수학 100점을 받았을 때 주이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거 봐,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이지!' 고3 3월 모의고사 수학은 역대급으로 쉬웠지만 100점은 영예로운 점수였다. 같은 반 친구들 대부분이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았다. 하지만 주이는 '그들 중 한 명'이 되기 싫었다. 공부란 모름지기 스스로 하는 게 아니던가. 스스로 공부하지 못하는 평범한 군상에 자신의 모습을 겹쳐 올리기 싫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은 4남매 중 막내인 주이가 사교육비를 아껴준 것을 기특하게 생각했고, 퍼붓는 칭찬 세례 속에서 주이는 핑크빛 미래를 꿈꿨다.


두 번째로, 컴퓨터 공학과에 입학한 주이가 3학년이 됐을 때, 취업은 해야겠는데 쌓아둔 스펙은 없고 토익 점수도 만들어야 한다는 핑계로 친구들이 줄지어 휴학하기 시작했다. 주이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공과목 평균은 B를 넘기 힘들었고, 프로그래밍 언어, 공학수학, 논리회로 같은 과목들은 정말이지 너무 고리타분했다. 하지만 취업의 문턱 앞에서조차 주이는 '그들 중 한 명'이 되기 싫었다. 취준생의 군상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주이의 눈에 들어온 탈출구가 바로 ‘호주 워킹홀리데이’였다. 자신을 남과 구별되게 하는 경험. 이거라면 휴학을 차별되게 정당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취업준비를 할 때 면접관이 "대학교 3학년 때 휴학은 왜 했나요?"라고 물어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건 “취업 준비를 위해 영어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땄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보다 훨씬 멋지지 않은가! 주이의 부모님은 적도를 가로질러 호주로 떠나겠다는 막내딸이 걱정돼 뜯어말렸지만, 그녀는 모든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 무소의 뿔처럼 씩씩하게 떠났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떠 모험과 패기, 열정과 행복으로 똘똘 뭉친 1년의 워킹홀리데이 경험은 주이의 인생에서 한 번도 1등 자리를 뺏긴 적 없는 위대한 업적이자 스스로 만들어낸 순수한 행복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두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주이는 책을 읽으며 그동안 자신이 벌었던 월급의 합계를 셈하며, 수억 원의 돈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지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이의 월급은 밤에도 불을 밝히는 사교육 현장의 전기세로 쓰이고 있었다. 과도한 선행학습과 경쟁을 부추기는 테스트 속에서 아이들을 학원에서 찍어낸 ‘그들 중 한 명’으로 키우고 있었다 생각하니 눈 앞이 컴컴했다. 무작정 쏟아붓는 교육비가 목숨을 맞바꾼 돈의 가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산 고가의 구두와 시계, 목걸이는 또 어떤가? 책이 물었다. 가장 행복한 시절의 자신이, 그때 꿈꾸던 미래를 지금 살고 있느냐고.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이십 대와 달리 현재의 주이는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릴레이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이 삶은 분명 과거의 주이가 꿈꾼 삶이 아니었다.


그럼 지금 뭘 해야 할까? 다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깊어가는 새벽, 책을 읽으며 주이의 질문은 '어떻게 돈을 모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가치 있는 소비를 할 것인가'로 초점이 바뀌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