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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Feb 18. 2024

사업은 처음입니다만

전집을 차리기 위한 준비물

D-20일


“야, 근데 시드니에 전집 차리려면 뭐가 필요하니? 난 도저히 거기서 전 부치는 네 모습, 상상이 안 된다”

전화기 너머로 세희의 깔깔 웃는 웃음이 얄궂다. 주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줄 대학동기의 질문에 그녀는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며 답을 했다.


“음... 일단 공간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게 뭔 줄 알아? 이... 전 부칠 때는 뒤지개가 진짜 중요한데, 이게 또 담양 특산품..."

“야, 그만! 너 설마 뒤지개 하나 들고 시드니에서 전집 차리겠다는 건 아니지?”

“어... 거기서도 필요한 건 다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호주도 사람 사는 데니 다 똑같지 뭐.”

“손님이 결제는 뭘로 하는데, 너 사업자 신고 이런 거 알아봤어? 세금은? 외국에서 사업해도 돼?”

“아... 그런 건 아직...”

“담양에서 산 뒤지개 가방에 넣고 비행기 탄 네 모습, 상상만 해도 웃기다. 근데, 희한하게 또 너랑 어울려, 하여간 마음만 먹으면 엉덩이부터 들고 나서는 건, 대학 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게 없냐? 후훗.”

“그러게. 난 계획보다 실행이 앞서서 문제지, 늘.”

“난 그게 너의 최대 무기라고 생각하는데? 20년 넘게 내가 널 지켜보면서 깨달은 건데, 남들이 망설일 때 넌 제일 먼저 시도해서 실패하고 정답을 찾아내더라. 대학 때 전공과제할 때도 넌 일단 뭐라도 풀어서 선배들 찾아가고 교수님한테 물어보고 그랬잖아. 문제가 너무 어렵고 물어보기도 부끄러워서 난 혼자 끙끙 앓고만 있었는데, 여기저기 도움을 구하며 결국 과제를 해내는 네가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 그때 네가 나한테 한 말, 기억 안 나? '야! 임세희! 문제는 발로 푸는 거야, 머리로 푸는 게 아니라고.' 였잖아. 그 말을 내가 평생 못 잊어. 네가 잘 다니던 회사 휴직하고 생뚱맞게 시드니에 전집 차린다니까 남편이 뭐라는 줄 알아? 어째 너 요즘 너무 조용했다며, 그냥 전집이면 몰라도 시드니에 차리는 전집은 대박 날 것 같대. 네 핑계로 나 우리 딸 데리고 시드니 한 번 가야겠다, 재워줄 거지?”

“당연하지, 오기나 하셔.”


주이는 뒤지개를 등 뒤에 X자로 꽂고 시드니 한복판에서 전집을 물색하는 철부지 아줌마를 상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명절에 전 좀 잘 부치는 것과 낯선 외국에서 전집을 창업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하지만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이다.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다. 전을 팔 상가가 구해지면 그다음은 또 어떻게든 되겠지, 차근차근 산을 넘자는 각오로 시드니 부동산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시드니부동산을 검색했다. 요새 웬만한 사업가들은 SNS 계정 하나쯤은 다 갖고 있으니 시드니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한국인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색 포털에서 홈페이지로 검색하면 뻔한 정보와 홍보를 위한 낚시글이 대부분이다. 직접 소통으론 SNS 만한 게 없다. 게시물을 둘러보다가 팔로워 1.5K를 소유한 여성의 계정 하나를 발견했다. 계정을 꼼꼼하게 살펴본 주이는 그녀에게 메시지(DM)를  보냈다.


주이_‘안녕하세요. 저는 시드니에 *take away(포장) 식당을 하나 차리고 싶습니다. 크기는 작아도 되는데 유동인구도 많으면서 금액도 저렴한 곳으로 추천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포장'을 'Take out'이라고 표현하는 것과는 달리 호주에서는 'Take away'라고 표현한다.


유동인구는 많은데 금액도 저렴한 곳이라... 맛은 있는데 살은 안 찌는 분식이 뭐냐고 묻는 거랑 뭐가 다른가? 일단 전집을 차리고 싶다는 말은 아껴 두었다. 전집은 냄새가 좀 나니 혐오시설로 오해받을지도 모르고, 어쩐지 전집을 차리겠다고 하면 호주에는 이미 한식당이 차고 넘쳤기 때문에 초보 사업가로 보일까 봐 염려가 됐다. 초보 사업가로 보이면 좀 어쩌겠냐마는 막내로 자란 주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애송이 막내 취급하는 친척들이 견디기 힘들었다. 주이가 보낸 메시지에 즉시 답장이 도착했다.


수지_'네. 안녕하세요. 뭘 파실 건데요?'

주이_'그걸 꼭 말해야 하는 거죠?'

수지_'말해주셔야 해요. 상가 주인이 그걸 알아야 임대를 내주거든요.'


이름이 '최수지(Suji)'인 이 여성은 호주에서 약 15년 간 살았고, 본업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부업으로 부동산 관련 중계일을 하고 있다고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소개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자기소개 영상, 최근 시드니 부동산 트렌드 영상 등 다수의 정보가 공유돼 있었다. 주이는 그런 피드들을 자세히 살펴보며 그녀가 책임감을 갖고 자신을 도와줄 거란 확신을 가졌다. 보이는 게 전부인 인스타그램이지만 팔로워가 괜히 많은 것은 아닐 것이다. 주이는 이 사람에게 주문을 걸듯 짧게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나는 이 여자에게 시드니 전집의 운명을 베팅한다.' 그리고 답장을 보냈다.


'포장만 전문으로 하는 전집을 차릴 생각입니다. 시드니에 한식당은 많지만 전 포장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미 보내버린 메시지를 수차례 읽으며 주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창업 의도까지 밝힌 건 좀 TMI인가?”


메시지를 읽은 수지는 뭐라고 쓰려다 말았다. 인스타그램 대화창은 상대방이 메시지를 확인하면 '읽음'이라고 표시되고, 메시지를 쓰고 있는 동안에는 친절하게 ‘…’ 이모티콘이 꿈틀거린다. 그런데 '...'이모티콘이 잠깐 꿈틀대다가 멈춘 것이다. 주이는 답장을 기대하면서 대화창을 빤히 쳐다봤지만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뭐지? 뭔가를 쓰려다 말았는데?’

주이는 조바심이 났다.


'무슨 말을 쓰려다 말았을까? 내가 그냥 찔러보는 사람처럼 느껴졌을까? 아니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사전 파악하려고 내 계정을 둘러보고 있는 건 아닐까?'


수지의 답을 기다리는 1분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진 주이는 수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주이가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살펴봤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누구를 팔로우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지.' 수지가 팔로우하는 계정들은 대부분 부동산 관련 계정이거나 요가&필라테스 등 운동과 관련된 계정이었다. 팔로우 계정이 100개도 채 되지 않아 금방 훑어볼 수 있었다. 5분이 지났지만 아직 수지에게는 답이 없다. 주이는 수지의 답을 기다리는 동안 5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벌써 부동산을 알아보느라 시간이 걸린 걸까? 아니지, 알아보겠다고 말을 해줘야 맞는 게 아닌가? 어쩌면 내가 애송이 같아서 바가지 씌울 궁리를 했을까? 아니면 내 인스타그램에 들어와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뒤져봤을까? 돈이 안 될 것 같으니 대충 무시하려고 그런 걸까? 아니, 그런데 나는 일면식도 없는 이 여자의 <응답 없음>에 어째서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거지? 답을 하면 고맙고 답이 없어도 그만이지. 다른 계정 찾아서 물어봐도 되잖아? 희한하다 정말, 알 수 없는 이끌림 같은 것이 자꾸만 이 여자에게로 향한다. 나도 모르게, 자꾸.'


시간이 흐를수록 밀려오는 불편함에 안절부절못하던 그 순간,

 ‘…’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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