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네가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남이 부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

by 새이버링

가끔 점심식사를 함께하는 두 명의 지인이 있다. 한 명은 동갑내기 여자동기이고 한 명은 10살이나 많은 남자선배인데, 이 남자 선배는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같은 팀의 선배로 만났다. 이제껏 알고 지낸 지 16년이나 돼 그런지 지금은 다른 부서여도 만날 때마다 친정오빠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이 두 사람과 나의 공통점이 두 개쯤 있는데 첫째, 당하고는 살아도 괴롭히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는 것. 둘째, 셋 다 책을 즐겨 읽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났다 하면 서로 상처받은 고충을 꺼내 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와도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책과 담쌓고, 멘털이 무쇠 같은 누군가가 우리의 점심식사에 끼어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언제 봐도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한 이 두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종종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한다. 한 번은 내가 정말 잘 쓰는 일본산 샴푸 브러시를 두 사람에게 선물한 적이 있는데, 다음에 만났을 때 그 샴푸 브러시가 요물이라고 극찬하며 선물한 나를 덩달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선물 받은 물건을 잘 쓰고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에게는 자꾸자꾸 선물하고 싶어 지므로, 나는 오늘도 두 사람을 만날 때 치약 두 개를 챙겼다. 레몬향 덕분에 양치 후 개운함을 느낄 그들을 상상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기쁨을 누렸다. 친정오빠 같은 선배인 ‘신’이 내가 건넨 치약을 받자마자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이야... 난 네가 진짜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왜요? 돈 많이 벌면 선물 더 많이 할까 봐?"

"그렇지... 너는 벌어서 남주잖아. 더 많이 벌면 더 비싸고 더 좋은 선물을 줄 거 아냐."

"아우, 정말... 하하하"


농담이라 해도 어째서 그 말이 내 속에서 별빛처럼 쏟아졌을까? 축복처럼 들렸다. 부자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뿐인 세상에서 남이 부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만큼 드물기 때문이리라. 새해 덕담도 아니고, 일상에서 툭 튀어나온 말인데 그 말의 이유가 '내가 벌어서 남주는 사람이어서'라니. 그렇다면 나는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정말 내가 돈이 많다면 한우 오마카세라도 쏠 생각이다. 하늘도 그런 나를 돕지 않을까? 갑자기 지금보다 돈을 더 많이 벌면 아끼는 내 사람들에게 좀 더 근사한 선물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솟는다.


주위의 누군가가 부자가 되길 바란 적이 있던가.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은 덕을 나누는 사람일 것이다. 성공했을 때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길 바랄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잘 되는 것이 내게도 기쁨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어른들이 '손주 자랑 하려면 밥 사고 해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SNS 속 인플루언서도 팔로워가 많아지고 승승장구하는데 제 자랑만 하고 나눔은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등을 돌린다. 점점 잘 되는 사람이 베푸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은 정말 잘 돼야 한다면 박수를 보낸다. 가수 '션'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위해 마라톤을 하고 집짓기 모금을 할 때 사람들이 기꺼이 정성을 보태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선한 의도를 갖고 다른 이에게 베풀면 그 사람은 점점 더 부자가 되는 것 같다. 부자가 어디 꼭 돈만 많아야 부자인가? 따르는 사람이 많은 것도,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많은 것도 부자다. 좋은 일이 한 번 생기면, 은인에게 한 번 이상은 베푸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충고한다. 또 내 주위에 베푸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줄 작정이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