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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운전을 잘하시는 분이 먼저 길을 열어주시죠.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나를 낮추는 사람

by 새이버링

아이들과 호주에서 두 달 살기를 했을 때 후기 하나 없는 시드니 현지 스포츠 캠프를 예약했다. 시드니도 사람 사는 곳이니 못할 건 뭔가 싶어서 일단 몸으로 부딪혀보자고 용감하게 신청한 캠프였다. 9시 전에 약속장소인 무어파크에 도착했다. 서로 처음 본 아이들은 나이에 따라 그룹을 나눠 활동할 예정이었다. 당연히 두 아이도 서로 다른 그룹으로 나뉘었다. 드물게 동양인 몇 명이 보였으나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듯했다. 그날따라 하늘에 구름 한 점도 없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영어 몇 마디라도 꺼낼 수 있는 열두 살 아들은 걱정이 덜 됐다. 아는 영어도 수줍어 못 꺼내는 여덟 살 딸아이의 그룹 쪽에 서서 무리에 잘 스며드는지 살폈다. 사실 언어를 초월해 재밌게 놀기만 하면 금방 친구가 되는 게 스포츠캠프의 장점이다. 하지만 걱정했던 대로 딸아이의 얼굴에 햇빛 알레르기가 올라오면서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울상을 지었다.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니 답답한 모양이다. 담당 선생님은 친절하게 아이의 관심을 끌고 공 주고받기를 시도하는데 딸아이의 시선은 오직 내게만 향해 있었다. SOS 신호였다.


살다 보면 무모하게 시작했지만 아니다 싶을 때에는 빠른 포기가 답인 경우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 생각이 됐다. 캠프가 시작된 지 30분이 지난 참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호랑이 구덩이라도 이겨내 보라고 던졌을 대담한 엄마지만 낯선 나라에서는 다른 이야기다. 나는 딸아이를 잠깐 쉬게 할 핑계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다가갔다. 아들이라고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늘도 없는 무더위에 테니스 연습을 하는 다른 아이들은 괜찮은 건지 궁금했다. 잠깐 손짓을 해서 아들을 불렀다. 괜찮냐고 물으니 호주 남자아이가 자기에게 뭐라고 하더니 친구들끼리 키득키득 웃었는데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고 했다. 인종차별을 당한 모양이다. 나는 아들까지 나오라고 한 뒤 처음 집결했던 작은 사무실 앞으로 갔다. 데스크에는 담당자가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저, 혹시 지금 두 아이의 캠프를 그만둬도 될까요?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요."

"처음이라 그래요, 제가 선생님에게 잘 이야기해 볼게요. 분명히 아이들이 좋아할 겁니다. 좀 쉬었다가 다시 참여해 보세요."

담당자는 처음이 아니라는 듯, 아이들은 놀다 보면 금방 적응할 거라는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나는 무모하게도 이미 캠프비를 3일 치 선결제한 상태이다. 한국 같았으면 노련한 한국말과 안타까운 제스처로 통사정을 해서 전액 환불까지 얻어 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시드니 무어파크의 담당자는 한국인이 아니었다.

"죄송해요. 그만두고 싶은데, 혹시 환불이 가능할까요?"

나는 지난주까지 참여했던 시드니대학 스포츠캠프가 아이들과 훨씬 더 잘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 환불받아서 한시바삐 시드니대학 스포츠캠프에 재등록을 할 참이었다. 그러나 담당자는 이미 결제가 끝났기 때문에 중도 포기는 물론, 환불도 당연히 어렵다고 했다. 나는 울상이 됐다.

‘지금 햇볕이 너무 강한데 그늘도 없는 데다가 내 아이들은 영어를 잘 못해! 심지어 인종차별도 느껴져!’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야속하게도 날씨는 점점 더워졌고 내 뒤에 선 아이들은 울상이 된 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으며 나는 논리적으로 그를 설득하기 위해 번역까지 해낼 힘이 없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캠프를 환불하고 당장 이곳을 뜨는 것'뿐이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는 이 직원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프로그램이 참 좋더라고요. 선생님들도 굉장히 친절하시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Unfortunately) 제 아이들이 캠프에 참여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부끄럼을 많이 타기도 해서 어려워해요.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캠프에 등록한 저의 불찰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환불해 주시면 안 될까요?”


순간 어디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권력자는 힘이 약한 사람에게 베풀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이 담당자를 권력자로 만들고, 나는 낮아지는 것이었다. 다른 핑계는 차치하고, 내 아이들이 준비가 안 됐고 내가 신중하지 못했다라고. 모든 것이 내 불찰이니 사과한다고. 남자는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하던 아까와 달리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얼마든지 그 표정을 견디며 기다릴 수 있었다. 남자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그럼 캠프비를 절반만 환불할게요. 이런 경우는 없어요. 원래는 환불이 안 되지만 절반이라도 환불하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에요. 이번 주 목요일쯤 카드로 환불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권력자의 베풂에 감사하는 표정으로 예약 정보와 카드 번호를 알려줬다. 그는 더 이상의 협상은 안 된다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절반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기뻤다.


그때 만약 내가 불평불만이 섞인 진심을 말했더라면 환불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 직원은 심드렁하게 ‘그건 네 사정이고! 시드니는 원래 더워, 영어 못해도 운동 잘하면 되지.‘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양해를 구해야 할 때는 나를 낮추는 방법이 통했다. 결정권을 쥔 상대에게 나를 낮추면 난처한 상황을 다소 부드럽게 모면할 수 있다.


백화점에서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할 때에도 이런 방법을 쓴다. “이 옷이 저랑 안 어울려서요.” 보다는

“옷은 정말 예쁜데 제가 이 옷을 못 살리네요.”라고 말한다.

학원을 바꿀 때에도 쓸모가 있다. “아이가 성적이 안 올라서 학원을 바꾸려고요.” 보다는 “선생님의 우수한 교육 방식을 저희 아이가 아직 따라갈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기 싫거나 여력이 안 될 때는 “그 일 제가 할 수 없는데요.”보다는 “제가 아직 그 일을 맡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스튜어드다이아몬드는

'협상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의사결정자를 찾고 목표에만 집중하라.'

'상대가 가진 지위와 힘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고 말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고장 난 트럭 탓에 차들이 대치하면서 서로 비킬 생각을 하지 않자 반대 차선의 택시 기사에게 "아무래도 운전을 가장 전문적으로 하실 줄 아는 분이 먼저 길을 열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 택시 기사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차를 뺐다는 책 속 사례에 박수를 쳤다. 서로 양보하지 않을 때 잘잘못을 가리며 싸우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둘 중 하나가 양보해야 달성할 목표라면 스스로를 먼저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 우아한 처사다. 세상에는 자신이 낮아지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서로 더 잘났다고 자신을 드러내기에 바쁘다. 그러나 자신을 어디까지 낮출 수 있느냐는 내가 원하는 목표를 얼마나 더 잘 이루어 낼 수 있는가에 적잖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족함을 솔직히 드러내면서 권위자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절대 추한 일이 아니다. 진짜 추한 사람들은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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