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점심메뉴라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해.

내 의지로 되는 게 참 없는 세상에서 말야.

by 새이버링

오늘 점심을 함께 먹기로 한 동기와 카톡으로 뭐가 당기는지 의견을 주고받았다.

“오늘은 베이글 먹을까?”

“그래, 좋아.”


오전 내내 내 의지와 관계없이 해치워야 할 일들로 부산한 시간을 보냈다. 회사에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고, 해야 할 일만 가득이다. 고대하는 점심시간이 임박해 동기를 차에 태우고 베이글 맛집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 갑자기 오늘 배가 좀 고픈데, 우리 빵 말고 밥 먹을까?”

“응, 사실 나도 오전 내내 말도 안 되는 일들로 떠들었더니 좀 배가 고프긴 해. 우리 밥 먹자.”

“음... 그럼 돈가스 어때?”

“돈가스 좋다!”


돈가스 메뉴 선택권을 쥔 동기와 나는 꽤 비장했다. 나는 주저 없이 가격이 비싼 치즈 돈가스를 선택했다. 동기는 메뉴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가장 기본 메뉴인 등심돈가스를 주문했다. 머잖아 우리가 주문한 돈가스가 나왔고 나와 동기는 허기를 반찬삼아 돈가스를 맛있게 해치웠다. 동기는 내 치즈돈가스를, 나는 동기의 치즈돈가스를 주저하지 않고 맛보았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는데, 둘 다 거의 안 남기고 먹은 걸 보니 오늘 베이글로 점심을 떼웠으면 큰일 날 뻔했겠다는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있잖아, 세상엔 참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잖아? 특히 회사에서 말야. 근데, 오늘 점심 메뉴만큼은 내 뜻대로 정할 수 있다는 게 새삼 행복한 거 있지, 특히 너랑 만날 땐 진짜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어서 좋아.”

“나도 그래. 오늘 점심 메뉴, 좋았다.”


빠방한 배도 소화시킬 겸 한참을 걸어 각별히 애정하는 라테 맛집까지 가서 식후커피를 사들고 왔다. 점심 메뉴뿐만 아니라 커피까지 내 취향으로 골라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과 ‘하루 한 시간’ 내 의지를 존중하며 보냈다는 사실에 충만해졌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퇴근 전까지 남은 시간들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소진되겠지만, 정확히 내 의지로 보낸 한 시간의 충전 덕분에 잘 버틸 수 있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사무실로 터벅터벅 되돌아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