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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한 명은 서울대에 간다

어른의 계시

by 새이버링

어른이 되기 전 다양한 형태로 어른의 계시를 들었다.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초월적 존재가 알려준다'는 의미로 ‘계시’는 내게 일종의 미신쯤으로 여겨졌다.


학창 시절, 최선을 다해 중력과 인력에 대해 설명한 물리 선생님은 수업 종료 10분 전에 이런 말씀을 했다.

“오늘 내가 말한 내용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이 교실에 딱 2명이 있더라. 그런 애들은 꼭 서울대 가더라.”

그러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그 둘 중에 한 명이구나. 앗싸!’

나는 서울대를 안 갔지만, 이런 종류의 계시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가장 많은 계시를 했던 사람은 단연코 우리 엄마인데, 10년 전에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점을 봤는데 자식들 4명 중에서 딱 두 명이 나한테 그렇게 효도를 한단다."

그러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그 둘 중 한 명일까? 지금 내가 하는 게 효도가 맞나 보군.'

나 없을 때 언니 두 명이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한다.

언니들 왈, "솔직히 엄마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엄마 왈, "막둥이 낳아 줬잖아!"

언니들 왈, "....."

그 정도로 막둥이인 나의 존재는 언니들과 엄마에게 우열을 매길 수 없이 중요한 존재다. 으쓱.

(나는 엄마가 말한 그 두 명의 효자 중 한 명이겠지?)


엄마의 계시는 이후로도 여러 가지다.

"엄마가 점을 보고 왔는데, 너는 돈이 어디로 새어 나갈 틈이 없다더라."

"엄마가 어릴 때 할머니가 점을 봤는데, 나중에 내가 자식을 낳으면 집안을 일으킬 위인이 된단다."


이런 말을 듣고 자라면 진짜 그렇게 될 것 같다. 같은 이유로 미국의 치과의사들 중 'Dennis'라는 이름이 유독 많은 걸지도 모른다. 어릴 때 부모님이 아이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주면 장래에 치과의사가 될까 봐. (아이들도 '내 이름은 데니스니까 덴티스트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을까?)

*Dennis라는 이름이 Dentist와 관련하여 가장 흔히 언급되는 이름인 것은 맞으며, 이는 심리학 연구의 흥미로운 사례로 종종 인용됩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이름이 직업 선택에 영향을 미친 심리적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름의 시대적 인기(인구통계학적 요인)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쟁이 있습니다.


크게 돈 드는 일 아니라면 한 번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크리스천인 내가 점을 봤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도 좀 찔리니까 "엄마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점을 봤는데..."로 시작하는 선의의 거짓말. 아이들은 순수하니까 신비로운 거짓말에 잘 속는다. 어릴 적 했던 어른의 거짓말은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할수록 유치하지만, 때때로 누군가에게 예언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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