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 육아휴직이 준 선물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우리는 고민 끝에 동시에 6개월간 육아휴직을 쓰기로 했다. 우리의 결정은 주변 사람들에게 다소 유별나고 비효율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한 명이 먼저 쓰고, 그다음 사람이 이어서 쓰면 더 길게 아이를 돌볼 수 있잖아. 굳이 왜 동시에 써?”
“둘 다 한꺼번에 육아휴직이 가능해? 세상 참 좋아졌다. 우리 때는 말이야~ 한 명은 일하고, 한 명은 육아하면서 다 키웠어.”
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 명이 먼저 육아휴직을 쓰고, 다른 한 명이 이어받으면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기간을 최대한 늘릴 수 있다. 또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정부의 지원이 확대되었고 우리 둘 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직군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출산 후 곧바로 동반 육아휴직을 하고자 한 것은 단순히 육아의 부담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리는 ‘부부’에서 ‘부모’로 변해가는 시간을 함께하고자 결정한 거다. 이 여정을 각자 따로가 아니라, 나란히 걸으며 배우고 싶었기에.
물론, 둘이니까 육아가 좀 더 수월할 거라는 기대도 당연히 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신생아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손이 많이 갔다. 밤낮 구분 없는 생활, 짧은 간격으로 반복되는 수유와 기저귀 교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아기의 울음, 끊임없이 생성되는 아기 빨래와 청소. 하루 종일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대화 없이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순간이 더 많아졌다. 그나마 나누는 대화라고는
“언제 수유했지?”
“기저귀 갈았어?”
“왜 계속 울지?”
“우리 뭐 먹지?”
같은 주제에 한정되었다.
가끔은 잠들지 못하고 보채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쌓여가는 집안일에 서로가 지쳐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갈등을 피하고자 꾹꾹 눌러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 어느 날, 진솔하게 대화하던 중에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신혼여행 이후로 이렇게 둘이 오랜 시간 붙어있는 건 처음이잖아. 어쩌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 순간이 참 소중한 것 같아. “
실제로 생각해 보니 신혼여행을 제외하면, 우리는 결혼 후 각자 직장에서 일하고 그 외의 시간은 자기 계발, 취미 생활을 즐기느라 서로 바빴다. 하루 종일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함께하는 날은 의외로 별로 없었다. 그런데 육아휴직으로 인해 우리는 다시 한 공간에 머물며,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서툴고, 때때로 의견이 부딪쳤지만, 우리는 부모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가고 있었던 거다. 남편 덕분에 관점을 바꾸고 나니 이 시간이 나도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수유를 마치면 남편이 아기를 받아 안고 자장가를 불러줄 때, 남편이 화장실에서 아기의 똥 묻은 엉덩이를 닦는 동안 내가 손수건과 로션, 기저귀를 준비해 둘 때, 간신히 잠든 아이를 성공적으로 침대에 눕힌 뒤 서로를 바라보며 음소거로 축하를 나눌 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이지만 우리는 아이와 함께 나날이 성장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육아휴직은 단순히 ‘일을 쉬는 시간’이 아니다. 아이를 돌보며, 동시에 부모라는 새로운 역할을 배워가는 시간이다.
함께 육아휴직 쓰길 정말 잘했다. 주어진 문제를 같이 고민하며 결정하고, 아이의 첫 순간들의 함께 보고 기쁨을 나눌 수 있으니까. 또 서로의 부족함을 가엾이 여기고, 품어주며 더욱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으니까.
우리는 이렇게, 함께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 기특하군.
출산을 앞둔 이에게,
- 가능하다면 동반 육아휴직을 계획해 보자. 부모로서의 첫걸음을 함께하는 건 무엇보다 값지다.
-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둘이서 틈틈이 소풍을 즐기고, 여유가 된다면 여행을 다녀오자. 육아를
앞둔 서로의 기대와 염려를 충분히 나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