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감사하기
우리나라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있다. 있을 때는 그 존재감이 두드러지게 티 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을 때 그 부재가 크게 느껴지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고요한 집안에서 남편의 빈자리가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소금이의 탄생부터 늘 함께 있었던 남편이 9월 자로 복직을 했다. 배우자 출산휴가와 6개월의 육아휴직을 포함하면 거의 7개월 가까운 시간을 함께했기에 나 혼자서 아기를 보는 이 상황이 낯설고 어색하다. 그동안 계속 함께였는데. 육아의 부담을 함께 지고 있었는데, 이제 나 혼자 지고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남편과 있을 때는 한 사람이 아이를 달래고 한 사람이 집안일을 하고, 필요하면 외출도 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걸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니. 울면 달래는 것도 내 몫, 집안을 치우는 것도 내 몫, 외출할 때도 아기와 한 세트로. 막막했다.
막연하고 불안함에 잠식될 수도 있지만, 감정에 취하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대비하기로 했다. 남편이 복직하기 일주 전부터, 혼자 집에 있을 경우를 시뮬레이션 돌리며 어떤 상황에 내가 취약해지는지,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는지 따지며 환경을 조성해 두었다. 일명 안전장치를 장착해 두기. 그동안 함께 육아를 하며 신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서로의 연약한 모습을 마주했기에 그 경험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 거다.
나는 집안이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수선한 공기에 짓눌리는 거다. 이걸 잘 아는 남편은 그동안 소금이가 사용했던 부피 큰 제품들, 아기 침대, 하이체어 부품, 수면 용품, 기저귀 갈이대 등등.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물품들을 전부 당근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외출과 산책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날 위해 휴대용 유아차를 알아봐서 저렴하게 구입하고, 근처 문화센터 수업도 등록했다. 집안일을 나 혼자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본인이 맡을 집안일의 목록과 언제 할지 시간을 정하는 철두철미한 모습까지 보였다. 눈으로 마음으로 남편의 진심을 채우고 나니 소란하던 머릿속이 고요해졌다.
그래, 남편은 이런 사람이지. 솔직히 하루 종일 옆에 딱 붙어있을 땐 불평과 불만으로. 좋은 점보다는 아쉬운 점이 눈에 쉽게 들어오곤 했다. 호강에 겨워서 말이다! 한 걸음 떨어져 보니 참 지혜롭고 현명하고 다정한 사람인 걸. 이제 없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소중하고 애틋하다. 문득 떠오르는 시구로 글을 급하게 마무리 짓는다. 소금이가 깼기 때문이다. 꿈속 세계에서 나온 소금이를 맞아줄 사람은 이 집에서 나뿐이니까.
함께 있어도 거리를 두라.
천국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출 수 있게.
서로 사랑하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사랑이 두 영혼의 육지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결혼에 대햐여> 칼린 지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