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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 May 25. 2020

기회의 땅에 살고 있다.

해외생활-이민자-워킹맘

내가 2010년 7월, 한국 학교의 인턴쉽 프로그램으로 뉴저지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미국에서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한국에서 취업을 하기에는 나는 나이가 많았고, 외국에서 일하고 살고 싶다는 내 꿈이.. 나를 먼 곳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내가 인턴쉽을 했던 회사는 취업 비자를 내 줄 생각은 아예 없었고, 회사 사정도 좋지 않았다.

인턴쉽을 연결해 주는 회사와 그 회사 간에 어떤 거래나 일들이 있었는지 나는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와 같이 온 다른 인턴들.. 우리 세 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막막했다.

나는 이 곳에 성공하기 위해 왔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럴 수 없다!! 나는 그 날부로 이 곳 저곳 이력서를 냈지만, 거절당했다. 

나는 일할 수 있는 취업비자(H1B)가 없었다. 인턴쉽 비자 (J1)가 있었지만, 이것은 인턴쉽이 끝나는 1년 후에 휴지조각이 될 것이었다.


그러다, 2011년 2월, 한국에서 뉴욕에 지사를 내고 싶어 하는 비영리 단체를 알게 되었고, 면접을 보고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비자의 문제가 있었다.

다행히도, 단체장님은 취업비자를 해 주기로 약 속지만, 당장은 어렵다였다.

나는 사설 영어 기관에서 학생비자(F1)를 받을 수 있었고, 낮에는 회사에 밤에는 영어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다음 해에 취업비자를 신청하였고, 취업비자를 드디어 받음으로써, 한국에도 다녀올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하던 중, 나의 운이 다했는지, 단체장은 2012년 12월 파산을 하였고, 나는 다른 회사로 옮겨야 했다.

하지만, 취업비자를 새로운 회사가 스폰서가 되어야 했는데, 이것 또한 녹녹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미국을 떠나는 것으로 결정하고 두바이로 향했다.


결혼도 하고 두바이에서 아이도 낳고, 2016년 지금 사는 버지니아의 한 시골마을로 이사 왔다.

나의 남편은 미국인이고, 나는 회사에 매달려 비자를 요청하지 않아도 되는, 영주권자가 되었다.

두 아이들 덕분에 조건부 영주권을 건너 띠고, 10년짜리 영주권 (대부분 Permant 영주권이라고 한다)을 받았다. 미국 시민권을 따지 않는 한, 2027년 영주권을 갱신해야 한다. 나는 시민권에 관심이 없다. 


영주권을 받고 일을 바로 시작하길 원했지만, 아이들이 어렸기에,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없었고,

내가 사는 마을은 너무 작아서 일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가야 했다.

운 좋게도 2018년, 동네에 있는 사설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곳의 직원은 아니었지만, 내가 지원했던 프로그램에서 이 곳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고, 일하게 되었다. 이것은 1년짜리 프로그램이었는데, 1년 연장할 수 있었지만, 나는 내 미래에 대해 여전히 불투명했었다.

2019년 5월, 아이들과 나는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나의 직장을 관두었고, 한국에서 잠시 일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돌아와서, 또 운이 좋게 이 단체에서 연락을 받고 2019년 11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정년이 한국보다 훨씬 늦으며,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술과 능력만 있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나는 기회의 땅이라는 말에 의구심이 들었다.

여러 비자를 거치고 영주권자가 되었지만, 사실 일을 구하는 것은 어려웠다. 

나는 미국에서 학위도 없고,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다.


미국은 우리 아빠가 말했듯이,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이다.

이들은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잘 살기 위해?

아니다!! 지금의 상태보다 나빠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일해야 한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평균수명이 길다.

의학의 발달도 있겠지만, 70세가 넘어도 정정하게 사시는 분들이 꽤 많다.

나는 동양인들이 더 오래 산다는 편견을 가지고 살았나 보다.

정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얼마나 더 오래 이 곳에서 살지, 그리고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미국에 아무리 일자리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민자에게 주어지는 일자리에는 분명 제한 또는 한계가 있다.

(정말 뛰어난 능력이 있지 않는 나처럼 평범한 이민자에게 말이다).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을 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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