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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먹는지 알고, 덜 버리는 밥상으로 살리는 지구

2022.07.01

<이 글은 아워플래닛​ 뉴스 레터에 기고한 글입니다. 아워플래닛은 지속 가능한 미식을 제안하는 푸드 큐레이션 플랫폼이며 서촌에서 이를 가능토록 하는 하는 음식을 선보이는 실험적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년 10월부터 10개월째 식사 일기를 쓴다. 내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먹는지에 대 한 기록이다. 가끔 내가 구매한 식재료가 어떤 경로로 내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더 가끔 어떤 방법으로 조리를 하는지도 적는다.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먹는 이야기를 수년째 올리다 1년간의 밥상을 제대로 기록해 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1년을 기록하면 내 밥상의 흐름도 알고 내가 아는 것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음식 전문가도, 그렇다고 특별히 더 많이 아는 것도 없다. 다만 천성이 ‘오지라퍼’라 좋은 것을 알면 여기 저 기 떠벌리고 나누길 좋아할 뿐이다. 식사일기는 그런 내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부엌 경력은 올해로 꼭 10년째다. 내가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침밥을 꼭 먹 어야 하는 남자와 결혼하면서부터다. 전라도 출신의 엄마는 하숙집을 하셨다. 빼어나진 않았지만 엄마의 음식은 언제나 맛있었다. 나에게 엄마의 솜씨는 당연했고 나도 엄마처럼 아무렇지 않게 국을 끓이고 김치를 담글 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맛있게 먹었지만 어떻게 해야 맛있는 음식이 되는지 전혀 모른 채 엄마는 서둘러 내 곁을 떠났고 나 는 결혼하며 밥상을 차려야만 했다.


엄마의 당연한 솜씨는 나에겐 없었다. 결국 배우기로 했다. 배워야 알고 딱 배운 만큼만 해내 는 미숙한 사람이 나다. 처음엔 백화점 문화센터 인기 강사의 요리를 배우러 다녔다. 수업 후 엔 한두 번 사용하고 말 온갖 식재료와 조리 도구를 구매해 백화점을 나왔다. 뭐든 어설프게 알면 욕심만 커지고 그 욕심은 결국 쓰레기를 생산해낸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사서 쌓아두고 그것을 버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내 배움의 순서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일상의 음 식을 잘 해내지도 못하면서 부엌에 온갖 먹지 않을 식재료와 사용하지 않을 도구를 쌓았다.


그래서 다시 공부했다. 내 밥상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 게 바르게 먹는 것인지, 식재료는 어떤 환경에서 생산되어야 하는지, 기술이 아닌 이론 공부를 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얻은 답은 ‘내가 무엇을 먹는지 정확하게 알고, 덜 먹고, 덜 버리고, 제철의 것으로 단순하게 먹자!’였다.


가장 먼저 한 실천은 덜 버리기다. 이것은 우리 부부의 식생활을 알고 난 후 가능했다. 우리 는 김치를 제외한 저장 음식을 제외하면 밑반찬이라 불리며 여러 차례 밥상에 오르는 반찬을 좋아하지 않았다. 김치와 한번 먹을 만큼의 한두 가지 반찬만 있으면 되는 사람였다. 살림 초 기에 나는 우리 부부의 식생활 패턴도 알지 못하고 남이 먹는 대로, 하는 대로 따라 했다. 내 가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어느 날 제육볶음을 반찬으로 내놓자 남편이 “오늘 무슨 날인데 고기반찬이야?”라고 물어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고기로 음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정도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니 냉장고는 타인의 취향으로 선택한 식재료, 결국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길 기다리는 음식이 가득 찼다. 결단을 내렸다. 마침 냉장고를 바꿀 때가 되었다. 양문형 냉장고를 포기했다. 냉장고가 작아지니 식재료를 살 때 조금 더 고민하게 되었다. 먹지도 않을 식재료를 남들이 산다고 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를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사서 음식을 하게 되었다. 농부와 직거래로 조금 많은 양을 구매하면 이웃 친구들과 나눴다.


식생활을 정확하게 알고 나니 우리 부부의 밥상은 촌스러울 정도로 단순해졌고 버리는 식재료는 눈에 띄게 줄었다. 누군가는 ‘참으로 인스타그래머블 하지 않은 밥상을 꾸준히 인스타그램 에 올린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꾸준히 내 밥상을 기록하고 보여준다. ‘조금 촌스러워도 괜찮아,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먹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먹는 것이야.’라고 스스로를 향한 주문이며 격려다. 그리고 이것이 내 방식대로 지구에게 조금 덜 유해한 사람으로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오후 4시에 김밥, 8시에 칼국수를 먹었다. 칼국수를 너무 좋아한다. 밀가루 음식 줄여야 하는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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