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호박잎 2,000원어치로 차린 여름 밥상

2022.07.31

호박잎은 정말 여름에 잠깐 먹을 수 있는 식재료다. 호박잎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은 고작 호박잎 쌈과 호박잎 된장국이다.


서울문화재단이 대학로에 전용 극장 <쿼드>를 개관했고 요즘 개관 행사가 한창이다. 개관 행사의 최고는 좋은 공연을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덕분에 이자람 주연의 연극 <오일>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연극을 보러 가는 길에 혜화로터리에서 대학로를 연결하는 횡단보도 앞에서 호박잎을  샀다. 동네 텃밭에 농사를 하시는 할머니일 게 분명하다. 할머니는 잠시도 손을 쉬지 않고 호박잎과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계셨다. 바삐 움직이는 마른 손에 눈길 멈추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빨간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호박잎을 가르치며 얼마냐 묻자 2,000원이라고 하셨다. 돈을 드리며 호박잎을 받아 드는데 할머니 옆에 동상처럼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눈빛이 잠깐 반짝였다.


호박잎은 흔하면서 귀한 식재료다. 여름 밥상에 자주 오르지만 마트 등에서 찾으면 없다. 오히려 이 할머니처럼 자신의 작은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들고 나와 파시는 분에게 사는 게 빠르다. 요즈음엔 한성대 입구역 5번 출구 앞과 6번 출구 앞 버스 정거장 인도에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따리를 살펴보면 호박잎과 고구마 줄기 등이 있다.


어제 구매한 호박잎 2000원어치 중 반은 국으로 반은 찜을 해 쌈으로 먹었다. 국을 끓일 땐 호박잎을 손으로 찢어 조금 세게 비벼 넣는다. 호박과 함께 된장국을 끓이면 별 반찬이 필요 없다. 호박잎 쌈을 따로 찔 필요 없이 밥하는 솥에 밥 뜸 들일 때 올리면 된다. 이 경우 중간에 뚜껑을 열 수 있는 솥이어야 한다. 쿠쿠나 쿠첸 등 고가의 솥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솥은 밥이 되는 중간에 뚜껑을 열 수 있나?

 

녹두밥을 호박잎에 올리고 된장을 넣어 싸서 먹고, 아삭이 고추는 된장에 찍어 아삭! 한 잎 베어 먹고, 뜨끈한 호박잎 된장국을 한술 크게 떠먹으니 ‘집밥이 최고’란 말이 절로 나왔다.


오늘 밥상의 대부분 식재료는 인스타그램에서 구매했다.

작은빛농원 @hyejin4081 의 아삭이 고추

마케 자란 @__zaran 의 녹두와 쌀

통영성림 @an.mijjung 의 퍼드득 새우장

매거진의 이전글 태풍이 오는 날의 광장 시장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