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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털엔 카레라이스

2022.09.01

작년 10월부터 쓰기 시작한 식사일기가 어느새 11개월을 채우고 12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쓴 글을 다운로드하여 읽어보니 나는 참으로 형편없이 후회만 반복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주는 끊겠다 하고 다시 마시길 반복하고 다이어트는 입에 달고 살며 외식은 무척 잦았다. 그래도 창피한 줄 모르고 적고 있으니 그 점은 칭찬한다.


살림을 게으르게 하면 냉장고에서 표가 난다. 냉장고에 오래된 채소와 과일이 제법 뒹굴고 있다. 호박, 싹이 난 감자, 말라가는 파프리카, 조그라드는 아스파라거스, 푸석해진 사과 모두 넣고 볶다 물을 부었다. 집에 있던 카레 가루의 봉지 설명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단 맛이 강할 것 같아 각종 허브와 페페로치노를 추가하고 끓였다. 채소가 익고 카레를 넣고 맛 보니 맛이 맹숭맹숭하여 간장을 살짝 넣으니 그제야 맛이 잡혔다.


음식은 기본을 알면 여러 가지로 응용할 수 있다. 그 기본은 그 음식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를 넣는 것이다. 그게 한국 요리엔 간장과 된장이고 동남아 요리엔 생선 액젓 일본 요리는 단맛이 있는 양조간장과 아지노모토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로 오늘 나의 카레는 한국풍의 인도 카레 아닐까?


청주에서 강연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과 카레라이스를 넣고 반찬 통에 두 그릇을 담아 대영 씨에게 가져다주고 나니 우리 부부 한번 더 먹을 만큼 남았다. 무척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별로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저녁을 서둘러 먹고 국립극장으로 국립창극단이 공연하는 <귀토>를 보러 갔다. 고선웅 연출 작품이라 따지지 않고 예매했는데 그러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십여 명의 배우가 만들어 내는 코러스는 웅장했고 김준수 유태평양 민은경, 국립극단의 젊은 소리꾼의 연기와 소리는 힘 있게 무대를 장악했다. 그리고 젊은 소리꾼이 멋지게 연기하도록 창극단의 연로 배우들이 요소요소에서 받쳐주는 모습도 좋았다. 특별히 오늘 인터미션엔 내년이면 90이 되는 명창 윤충일 선생께서 나오셔서 수궁가의 한 대목을 불러 감동을 더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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