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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배우며 성장하기

2023.05.21_북토크 후기

지리산 고은정 선생님의 <제철음식학교>를 다니며 음식을 배운 2년의 시간이 마냥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 시외버스를 타고 4시간을 꼬박 달려야 실상사 앞에 도착한다. 수업은 선생님의 시연 후 수강생의 실습으로 이어지고 실습한 음식으로 차린 밥상에 앉아 밥을 먹고 이것을 치워야 끝이 난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준비해 주신 아침을 먹고 잠깐 산책을 한 후 두 번째 수업이 진행된다. 두 번째 수업의 식사를 마치고 다시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단체 생활이라 종종 불편한 사람도 만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 그럼에도 여기서 음식을 배운 시간은 내게 축복이었고 그대로 내 삶의 저력이 되었다.


내 책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가 나온 후 고은정 선생님께서 내려와 북토크를 해달라 하셨을 때 뿌듯하고 기뻤다. 선생님의 음식 먹을 생각을 하니 내 혀는 나의 마음보다 더 즐거워하는 듯했다. <시의적절약선학교>를 마치고 맛있는 부엌에서 열린 플리마켓에 다녀간 후니 13개월 만의 방문이다. 맛있는 부엌에 도착했을 땐 수강생들은 실습이 한창이었다. 마침 상암동 <맛있는 밥상 차림> 대표님 부부께서 장가르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장 가르기를 도운 후 5월의 제철 식재료인 꽃게, 완두콩, 상추로 요리한 음식으로 차린 밥상 앞에 앉아 밥 두 그릇을 비우고 선생님의 소개를 받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음식을 배우게 된 계기, 배우는 동안의 과정 그리고 제철음식학교에서 배움을 통해 일어나 내 밥상과 생활의 혁명, 식사일기를 쓰며 느낀 점 등 간증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수강생들은 피곤했을 텐데 늦은 시간까지 무척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내가 제철음식학교에서 참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 마련해 주신 숙소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 장을 갈랐다. 무려 12말을 가르는데 여럿이 하니 겨우 2시간 밖에 안 걸렸다. 장을 가르고 선생님께서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실상사 주변 산책을 하고 둘 째날 수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다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해 부엌을 나섰다.


돌이켜보니 지리산을 다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음식뿐 아니라 사람도 조금 성장했다. 가끔 변덕이 생기기도 하지만 확실히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음식에겐 생활도 인간도 성장시키는 힘이 있다. 분명히.


(참고로, 여섯 말에서 간장이 5리터 이상 나왔고 고로쇠물로 담근 장은 간장이 더 많이 나왔다. 물의 밀도가 높아 메주에 장물이 조금 덜 스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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