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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의 작은 여행, 하노이 <슬픔을 아는 사람>

06.12._좋은 책 읽기


어제 잠깐 힘겹게 읽은 유명 저자의 신간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엉성한 글자랑의 향연였다. 그 책을 들여다보며 씁쓸했다. 유명해지면 낙서도 책으로 나올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준비를 하면서 읽기 시작한 이 책, 유진목 시인의 작은 여행이자 체류 상념을 담은 <슬픔을 아는 사람>은 어제의 내 마음을 씻어주었다.


시를 쓰고 영화 작업을 하는 유진목은 오로지 식욕을 찾고자 하노이에 간다. 그곳에서 맛있게 먹었던 분짜를 기억하며. 그러나 분짜대신 그는 자기 자신을 조금씩 들여다본다. 그리고 슬픔을 직면해서 조금 나아진 자신을 떠올리며 다시 하노이를 찾고, 긴 소송에서 승소하며 또또 하노이에 간다. 이렇게 5월부터 8월까지, 그것도 코로나 시국에 세 차례나 하노이에 가 머문다.


이 책은 잠 못 들고 식욕 없고 예민한 유진목이라는 사람이 천천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알아가며 보듬게 되는 과정이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습관적으로 먼저 끝까지 휘리릭 뒤적이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러지 않았다. 첫 장을 열고 그의 슬픈 마음에 빠져들고 조금 나아지는 그를 만나며 안도했다. 뒤에 이르자 검은 활자로 채워진 종이 위로 갑자기 컬러풀한 사진이 등장했다. 활자도 컬러 사진만큼 선명해졌다. 깜짝 놀랐다. 맞다. 슬픔이 기쁨이 되는 순감이랄까!


이 책을 덮으며 나는 하노이가 궁금해졌다. 슬픔의 늪에서 빠져나와 약을 잊고도 잠에 드는 작가가 고마웠다. 슬픔과 맞짱 떠 건강해져서 더더욱 좋았다. 참, 책 표지 사진도 참 좋다. 작가의 하노이 객실이었을 것이다.


난다에서 나오는 시인들의 산문집은 한국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증명한다. 그리고 이 책도 그중 한 권이다.


작가는 오토바이 운전을 배웠을까?

이젠 아침 약도 먹지 않을까?


아름답게 꾹꾹 눌러 담은 슬픔의 활자들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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