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작, 글과 무대 신작
연극 <열녀를 위한 장례식>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박씨전’이 어떻게 쓰여졌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다. 3시간의 공연 시간 동안 극은 우리를 병자호란 한복판에 두기도 하고 과부의 수절을 강요하는 봉건의 규방에 앉히기도 하며, 작은 방에 모여 공동 창작의 쾌감을 선보이기도 한다. 특히 글과 읽기 그리고 쓰기에 대한 즐거움과 희열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너무 잘 표현되어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용은, 과부가 수절하는 것만으로는 열녀문이 세워지고, 왕조의 혈통을 의심하는 책들은 금서로 지정되어, 금서와 관련된 '책쾌' 즉 도서유통업자들과 양반들이 참수당하는 엄혹한 시절. 젊은 과부 월영이 죽어 고을에 열녀문이 세워졌고 잔치가 벌어지지만 자기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운선은 월영의 일기장을 찾아 그 죽음의 진실을 찾고자 한다.
그때, 비밀리에 함께 독서 계 모임을 진행하던 운선과 부인들은 자신들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책쾌' 조생이 오랜만에 마을에 돌아온 것을 발견하고 숨겨주려 한다. 한편 운선은 월영의 시누이이자 계원인 강주를 계 모임에 다시 불러 일기장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데•
연극은 편견과 억압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반댁의 장자이지만 남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장애를 가졌을 땐 집안에서 없는 존재다. 최헌은 투명인간처럼 살고 조생은 노비라서 그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괴롭다.
이야기는 몇 백 년 전을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조금 나아졌을까? 극이 끝나고 나오는데 서러움 북받쳐 우는 관객을 여럿 보았다.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이다.
진주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글과 무대’는 모든 작품의 시작은 좋은 글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으로 극을 만드는 극단이라고 한다. 신작 ’열녀를 위한 장례식‘은 이들의 다짐이 다짐만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었다. 내용과 주제는 진중하지만 대사는 가볍고 즐겁다. 배우들은 춤추듯 노래하듯 연기하며 활력 넘치게 극을 진행시킨다.
조생과 최헌 사이에 태어나 엄마의 뒤를 이어 책쾌가 되는 난이 역의 박소연 배우의 연기는 참으로 화려하다. 아이로 어른으로 남자로 연기하며 극을 이끄는 해설자 역할까지 맡아 그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한다. 사랑스럽다. 투명인간으로 사는 불운한 장자 역의 신강수 배우와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는 운선 송인선 배우, 강주 역의 김주연 배우, 조생과 월영의 시어머니 역의 이선휘 배우가 극을 단단하게 받쳤다면 변효준, 이현지, 윤현경, 이강우 배우는 1인 다역으로 열연했다. 이번 극에선 미루 역의 윤현경 배우가 그리 눈에 들어오더라. 물론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수려했다.
극의 도입부 설명이 조금 길고, 곳곳에 너무 친절하게 가르치는 듯한 대사가 튀어나와 조금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훌륭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글의 힘과 영웅주의를 끌어와 약한 자들의 연대를 이야기하는 점은 흥미로웠다. 진주 작, 이인수 연출의 신작임을 감안한다면 분명 더 발전시켜 우릴 또 놀라게 할 것이다. 글의 힘을 믿고 그래서 좋은 희곡이 힘이라고 믿는 나는 진주 작가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면 무조건 보아야겠다.
진주 작가는 말한다.
“이 연극은 누구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어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자 할 때, 마침내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상연 시간은 180분으로 길고 상연 기간은 짧지만 시간 내어 보시라.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찾아보시라. (By 혜자 @_savvy_curation )
진주 작, 이인수 연출
출연/ 박소연, 신강수, 송인성, 김주연, 이선휘, 변효준, 윤현경, 이강우, 이현지 배우
무대 박상봉, 의상 이윤진, 조명 김성구, 음악 최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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