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확실한 변영진 연출, 불의 전차 제작
연출에게 자기 색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힘이다. 변영진 연출은 이 힘이 있다. 변 연출의 연극은 쉽다. 그리고 소란하다. 도대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려고 이렇게 소란하게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그 소란함에 페이소스가 있다. <초선의원>이 그랬고 <이카이노 바이크>도 그랬다. <쇄골에 천사가 잠들다>로는 180도 다른 연출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역시 그는 관객을 정신없이 만들다 한 방을 날린다. <청천장단>도 그렇다.
연극의 시대는 1970~80년대 정도로 보이고 장소는 일본 조선인 학교 운동회장이다. 조선학교 고등학생 양광의 운동회를 보기 위해 양광의 증조할머니, 할머니, 부모, 고모 부부, 이모들, 형까지 온 가족 사대가 모였다. 조선인에게 술은 휘발유라며 맥주와 음식을 잔뜩 준비해 잔치를 벌인다. 술을 한 잔 걸친 양광의 아버지는 관중석과 학생들의 운동회장을 넘나들며 사소한 문제를 일으키고 급기야 귀화를 하려 했던 여동생을 자극하며 재일 한국인 신분으로 복잡한 심경을 가진 젊은 세대의 속을 뒤집는다.
오사카에 사는 재일 한국인의 비극 <이카이노 바이크>의 원작 <탄뎀 보더 보드>를 쓴 김철의 작가는 재일 한국인이 민족성을 잊지 않기 위해 다니는 조선 학교의 운동회를 통해 그들이 가진 깊은 정서를 담아냈다. 물 한 모금 마실 힘이 없는 증조할머니는 농악 장단이 울려 퍼지자 홀린 듯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어깨춤을 춘다. 우리 음악 장단에 따라 움직이는 할머니의 어깨춤은 이 연극이 하려는 이야기를 한방에 정리한다.
핏줄의 현실, 어쩌지 못하는 그 핏줄의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받아들여야지.
배우들 중 가장 연장자일 장용철 배우가 고2아들 양광 역을, 양광의 아버지 역을 김이담 배우가 맡아 둘 모두 방정을 떨며 연기하며 웃음을 준다. 변영진 연출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캐스팅에 나이를 거슬렀다’며 캐스팅 의도를 설명했다.
경박할 정도로 가볍고 쉽지만 묵직한 이야기, 신나게 웃다 웃음 끝에 코 끝이 찡한 연극, <청천장단>은 그런 연극이다.
한 인터뷰에서 이 극을 만든 극단 '불의 전차'의 비전을 변영진 연출은 이렇게 말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온 가족이 손을 잡고 저희 극단의 공연을 보러 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여전히 연극을 어렵게 받아들이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연극이 대중을 향해 친근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크리스마스에 온 가족이 ‘겨울왕국’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연극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불의 전차’는 더욱 다양한 꿈의 세계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불의 전차와 변영진 연출은 그 바람을 실현시키고 있다.
김철의 작, 변영진 연출
불의 전차 제작
출연 김계림 조은진 김보정 김이담 김려은 유은주 송광일 정연주 안도진 최경식 장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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