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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쌔비Savvy Dec 03. 2023

나는 누구인가?

연극 <너 자신이 되라>

문학 작품은 좀 읽은 것 같은데, 프랑스 작가가 쓴 연극을 본 적이 있던가? 이 극은 프랑스 작가가 쓰고 프랑스 연출가가 연출하고 우리나라 배우가 연기했다.


스펙도 외모도 좋고 능력도 있는 젊은 여자가 락스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본다. 면접관은 이 회사의 부장이며 장님이다. 이 부장은 불결은 죄이며 락스는 영혼까지도 깨끗하게 할 것이라 믿는 락스 맹신자다. 젊은 여자는 이 회사에 반드시 취업하고 싶어 면접을 위해 비싼 요금을 지불하고 코칭까지 받았다. 그러나 면접관의 질문 내용은 코칭이 전혀 소용이 없다.


면접관은 면접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라 지시한다. 면접자는 준비한 대로 자신의 능력과 업무에 맞는 좋은 성격을 피력한다. 그러나 면접관은 영혼이 없는 답이라며 계속 이상한 질문과 요구를 한다. 면접자는 최선을 다해 답을 해 보지만 질문과 요구는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부조리극이다. 답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 꼬이고 면접자는 자신의 답에 묶이게 된다. 게다가 정답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속이 터질 노릇이다. 관객의 대부분은 면접자에 자신을 대입시켜 볼 것이다. 나라면 저 상황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 그리고 ‘당신은 누구인가?’란 질문에 뭐라 설명할 것인지. 나도 그랬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설명하는 내가 진짜 나이긴 한 것일까?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필요하다. 그 탐구를 빼놓으면 우리는 자본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연극은 2인극이다. 전국향 배우는 면접관, 김보나 배우는 면접자다. 두 배우 모두 아주 적확하게 자신의 몫을 해낸다. 엄청난 대사량을 소화해 내고 아주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한다. 둘은 이미 <앤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2인극의 핵심인 합이 아주 좋았다.


전국향 배우의 연기는 이미 정평이 났다. 김보나 배우를 주목해 봐야 한다. 비음이 섞이고 약간 고음의 김보나 배우 발성은 때론 영리하고 때론 신경질적으로 들리며 매우 귀족적이다. 게다가 발음도 몹시 좋다. 그의 피지컬은 또 어떤가? 작은 무대와 큰 무대 어디에도 잘 맞는다. 배우가 좋은 바디를 가졌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연기는 어떤가? 두말할 필요 없다. 좋다. 정확하다. 동작도 좋다.


그렇다. 나는 김보나 배우 팬이다.


쏟아지는 대사에 맞게 무대도 연출도 담백하다. 이 담백함이 주제를 돋보이게 한다. 부조리 극이나 연극을 보며 대사에 의해 긴장 상태에 놓이는 것을 좋아하는 내겐 너무 좋은 극이었다. 그래서 관람 2회 차를 예매했다.


어제 내 옆에 앉은 젊은 커플은 1열 중앙 좌석에서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심지어 잡담까지 나누며 말이다. 대화를 들으니 연기를 하는 사람 같았다. 다른 배우의 연기를 대하는 그의 자세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났다.


12월 10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상연된다. 보시라. 보시며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시라. <by 혜자>


#savvy_play_2023 #연극 #연극리뷰 #너자신이되라

콤므 드 벨시즈 작

까띠 라뺑 연출

출연 #전국향배우 #김보나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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