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행성 쌔비Savvy Dec 23. 2023

230년 연기 경력 배우들이 꾸민 <고도를 기다리

신구 박근형 박정자 배우에게 뜨거운 박수를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4번 정도 본 것 같다. 20대, 40대 그리고 50대에. 어렸을 땐 그저 배우들의 3시간 여의 열연에 감동했고 조금 나이가 들어선 고도는 누구며 도대체 무엇일까? 질문했고, 이번에는 디디와 고고, 포조와 럭키는 어떤 관계일까? 란 질문이 생겼다. 아무튼 볼 때마다 다른 것이 보이고 느낌이 다른 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이번 국립극장과 파크컴퍼니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신구, 박근형, 박정자, 김학철 등의 원로 배우가 한 무대에 서는 것으로 관심을 모았다. 나 역시 같은 이유로 티켓이 열리자마자 예약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 블라디미르(디디, 박근형)와 에스트라공(고고, 신구)이라는 두 방랑자가 실체가 없는 인물 '고도(Godot)'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내용의 희비극이다. 인간의 삶을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그 끝없는 기다림 속에 나타난 인간존재의 부조리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1953년 파리 첫 공연된 후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해석으로 공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연출을 통해 1969년 초연되어 50년 동안 약 1,500회 동안 공연, 22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 연극이다.(제작사 설명)‘


극은 설명처럼 결론도 없고 뜻도 애매모호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부조리극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면서는 이 말들이 다 까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고와 디디는 대체로 남자 배우들이 맡지만 이 배역을 남녀로 두면 이 둘은 사랑하지만 방법을 모르고 없으면 안 되지만 가끔 떨어져 지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부부처럼 보였다.


난 늘 말없이 시키는 일을 하는 럭키에게 ‘생각해 보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온갖 현학적 단어를 쏟아내는 장면에서 감동했다. 그냥 늘 럭키가 나 같아서였다. 그래서 박정자 배우의 럭키도 무척 기대했다. 그러나 내겐 박윤석 배우의 럭키가 최고다.


이번 <고도를 기다리며> 최대의 수확은 ‘박근형’이란 대배우를 처음 인지했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박근형은 최고의 디디였고, 관객에겐 최고의 배우였고, 노령의 동료 배우 신구에겐 최고의 파트너였다. 연기 열정이 고스란히 보였으며 순간순간 신구 배우를 챙기는 마음도 따듯하게 전달되었다. 지금까지 무대 위 박근형 배우를 몰랐다는 게 미안했다.


극장이 다소 추웠다. 일체의 효과음 없이 대사로만 진행되는 극이라 상연 중엔 소음 때문에 난방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계속 맨발로 공연하시고 끝엔 바지도 흘러내려 내복도 입을 수 없으니 신구 배우님은 얼마나 추우셨을까 싶다.


쨍쨍한 힘이 느껴지지 않았지만(고고와 디디가 힘이 넘치는 것도 이상하지) 노령의 배우들이 두 달 동안 원 캐스팅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기립 박수가 나오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어쩌면 고고와 디디는 이제 70~80대 배우가 연기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이해 안 된다, 어렵다 좌절하지 마시라. 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여러 번 보고 나이가 들며 조금씩 내 것이 되는 극이다. 티켓을 구할 수 있으면 보시라! 그리고 노령의 대배우들에게 뜨겁게 박수를 보내시라.


참 공연 끝나고 동네 친구와 신당동 떡볶이집 들국화에서 떡볶이랑 술 먹었다. ㅎㅎ




오경택 연출

신구 '에스트라공(고고)'

박근형 '블라디미르(디디)'

박정자 '럭키'

김학철 '포조'

김리안 ‘소년’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다르지만 사랑스러운 연극 <템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