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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적절한 때를 놓치지

연극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결론부터 말한다. 나는 무대의 크기와 이야기의 진폭 그리고 연기의 적절함이 잘 어울린 극을 좋아한다. 말은 쉽지만 관객에게 저 조화로움이 전달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고해종 연출의 전작 <노란 달>도 이번 작품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은 그것을 잘 해냈다.


소박하지만 다양한 인간의 모순적 마음이 담긴 이야기,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단정하고 절제된 연출, 여기에 우수한 배우들의 넘치지 않는 연기 이 셋의 아주 좋은 합으로 만들어진 연극이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이었다.


서른일곱의 기미코는 <명탐정 메에>라는 그림책으로 한 출판사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그림책 작가 데뷔를 앞두고 있다. 이 일은 기미코가 몹시 원하던 일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기쁜 소식을 일찍 죽은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키워준 이모 마이코에게 알리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까? 기미코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27년 전 어느 날과 마주해야 한다. 기미코는 물론 기미코의 마음에 늘 무거운 돌처럼 얹힌 준도 소환해야 한다. 27년 전 준의 엄마와 아빠, 기미코의 아빠와 이모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미코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그때는 맞고 지금을 틀리다’라는 홍상수 영화의 제목이 떠오르는 연극이다. 27년 전 그들의 선택은 최선이었겠지만 돌아보니 그때의 선택이 꼭 옳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때 어렸던 기미코와 준의 현재가 그렇게 말한다.


2시간의 상연 시간이 빠르게 지난다. 여덟 명의 출연 배우는 모두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넘치거나 욕심내지 않고 연기한다. 소극장이라 가능한 연기다. 이런 연기는 디테일이 생명이다. 적절하게 톤을 올리고 맞춤하게 눈물을 흘린다. 드라마 클로즈 업으로 볼 수 있는 연기다. 이 연기가 극장의 규모, 하려는 이야기와 너무 잘 맞았다.


작품은 2022년 국립극단과 한일문화교류단에 의해 낭독 공연으로 올려졌고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국립극단이 매년 진행하는 일본과 중국 희곡 낭독 작품에 소개된 작품은 일단 희곡의 완성도가 높다.


보시라. 좌석이 적어 표가 넉넉하진 않을 것이다. 특히 옛 감정을 털어내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강력 추천한다. 이런 좋은 캐스팅으로 연극 보기도 쉽지 않다. (난 이런 잔잔한 드라마를 잘 만든 연극 취향인 듯)


철학극장 고해종 연출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노란 달에선 시소, 이번엔 다다미 바닥과 이동형 가리개로 무대를 꾸몄다.  (By 혜자)


관람일이 심은우 배우 생일이라 퇴근길에 깜짝 파티.


요코야마 다쿠야 작

고해종 연출 @haejongko

철학극장 @philotheatre 작품

고은민 권주영 박세인 @ppacseine 박수진 박승현 @hyun____sh 심은우 @sim.eunwoo 최준하 황규찬 @h.g.c.comma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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