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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헤다 가블러>, 이영애 선택은 옳았을까?

by 소행성 쌔비Savvy


배우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관극이나 관람에 지배를 받는 편이다. 그래서 남들이 아무리 좋다 해도 불호 배우가 나오는 극은 잘 보지 않는다. 헤다 역 캐스팅 소식을 듣고 표 양도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짧지 않은 시간 좋아하지 않는 배우가 나오는 극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보길 잘했다’이다.


연극을 구성하는 요소엔 주연 배우 말고도 많다. 이번 극의 경우엔 연출의 힘이 컸다. 입센의 원작을 리처드 이어가 각색하고 이를 정명주가 번역 다시 장영이 윤색했다. 그리고 극단 돌파구의 전인철이 연출을 맡았다. 그의 작품은 무슨 이유인지 많이 보진 못했다. 대부분 미니멀한 연출로 칭찬을 받았다. 미니멀한 연출은 때로 ‘도대체 연출은 뭘 한 거야?’라는 질문과 비판을 받기 십상이다. 단순화된 극 진행을 다양한 상징으로 채워 넣어 이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헤다 가블러에서 전인철 연출은 과감한 무대 구성과 배우들을 또 다른 관객으로 삼아 극이 진행되는 동안 헤다를 지켜보게 하였다.


원작에서 헤다는 좀 더 팜므파탈이라고 하는데 이번 극에선 예쁘기만 하다. 여기서 의문, 예쁘기만 할 뿐인데 어떤 남자는 목숨을 걸고, 어떤 남자는 빚까지 당겨 그를 얻고 또 다른 남자는 그의 결점을 잡아 지배하려 한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아무튼 이영애의 헤다는 이쁘지만 섹시하거나 팜므파탈적이지 않다. 오히려 백지원 배우가 맡은 테아가 더 매력적이다.


이영애 배우는 그의 연기 인생에서 연극 무대는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아마 매체 연기와 무대 연기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끊임없이 혼자 소화해야 하는 대사도 벅찼을 것이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연기도 그랬을 것이다. 대사 타이밍을 놓치거나 지문의 동작이 먼저 진행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끝내주는 베테랑 배우들이 그를 보완한다. 김정호는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지현준은 극의 긴장도를 올린다. 백지원은 미니멀한 극에 조미료 같은 갈등을 불러오고 조어진은 든든하게 공백을 채운다. 관객들은 이영애의 미모를 칭송하며 즐거워한다.


같은 기간 이혜영의 헤다 가블러를 보지 못하는 게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앞 회차를 예매했는데 윤상화 배우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일주일 공연이 취소되고 전 회차 매진되었기 때문이다. 비교해 보면 더 큰 재미가 있었을 텐데 아쉽다.


참, 엘아센의 헤다 가블러의 무대 연출은 거대한 상징이다. 그 무대는 헤다가 죽고 나서야 열리는 세계다. 19세기말에 쓰인 작품이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지속되는 세계다. 헤다의 욕망은 화려한 풍선처럼 부질없는 것이다. 전인철 연출의 다른 작품도 꼭 챙겨 보아야겠다.


이틀간 매체의 스타 배우들이 주연을 한 연극을 보며 느낀 점. 매체(TV나 영화) 연기와 무대 연기는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매체 연기가 프랜차이즈 음식이라면 무대 연기는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하는 발효 음식이다.


입센 작, 리처드 이어 각색

전인철 연출 전강희 드라마터그

이영애, 김정호, 지현준, 이승우, 백지원, 이정미, 조어진 출연

LG아트센터 기획 제작


#연극 #헤다가블러 #연극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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