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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해녀에서 찾은 정체성 연극 ‘엔들링스’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희곡의 맛

by 소행성 쌔비Savvy

천년의 시간이 끝나는 해녀의 세계에서 만난 이민자의 정체 ‘엔들링스’

두산아트센터가 기획 제작하는 연극 작품을 좋아한다.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지원한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은 신선하고 내용도 좋다. 그중 인문극장은 매년 주제를 정해 그에 맞는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 주제는 ‘로컬’이다. 로컬을 주제로 한 첫 작품은 ‘생추어리’ 두 번째 작품은 ‘엔들링스’다.


이 작품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쓰고 연출한 셀린 송의 희곡으로 미국에서 이미 상연되었고 한국에선 초연이다. 셀린 송은 작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어놓는다. ‘엔들링스’에도 이민자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잘 나타났다.


전남 만재도에는 이제 달랑 세 명의 해녀가 산다. 70대 80대 90대의 해녀는 여전히 물질을 하지만 이들이 죽으면 해녀는 멸종된다. 더 이상 이 고된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맨해튼에서 백인 남편과 사는 극작가 이민자 하영은 바로 이 해녀 이야기를 희곡으로 쓴다. 천년 넘게 지속되던 어떤 한 존재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그의 남편은 이런 이야기는 하영만 쓸 수 있는 이야기라며 자신의 태생이 달라 이런 이야기를 쓸 상상조차 못 한다며 칭찬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는 감상을 전달한다.


연극은 극 중 극 형태다. 만재도의 세 해녀 이야기가 뉴욕에 사는 극작가 하영에 의해 선보이는 형식이다. 해녀 셋은 각각 홍윤희, 박옥출, 이미라 배우가 맡았다. 사투리와 노인의 몸을 연기하며 웃음과 짠함을 동시에 준다. 하영 역엔 백소정 하영의 백인 남편은 시인 이훤이 맡았고, 극 중 극과 무대 감독 역은 경지은, 양대은, 이훤이 연기했다. 특히 무대 감독들은 극 중에서 웃음과 질문을 동시에 던져 연극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한다.


셀린 송이 이 작품을 준비할 때 그를 희곡의 세계로 이끈 에드워드 올비가 죽었고 그는 이 죽음을 통해 에드워드와 셀린 송 할머니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어, 역사, 부동산에 의해 다른 각자의 삶을 살아냈다. 셀린 송은 두 번의 이미, 한국에서 캐나다로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민했다. 이민자로 그가 느끼고 그만이 들여다볼 수 있는 존재론적 고민이 이 작품에 담겼다.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유머다. 매우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작가는 유머로 풀어냈다. 이래은 연출은 원작을 윤색하여 윤색본을 무대에 올리려 했으나 작가는 번역 선에서 허락을 했다고 한다. 윤색 작품이었다면 우리 관객에게 조금 익숙할 수도 있었겠지만 약간 낯선 스타일의 작품을 만나는 게 더 좋다. 이 작품은 미국의 현재 연극을 나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셀린 송 작

이래은 연출

홍윤희 박옥출 이미라 백소정 경지은 이훤 양대은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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