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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삶은 과연 정답인가? 연극 <타인>

by 소행성 쌔비Savvy


가까운 사람이나 자신에 대해 객괸적으로 바라보기는 참 어렵다. 남의 자식이나 남의 연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리룰 두고 제법 쿨하게 해법을 찾아내지만 같은 문제가 나에게 일어나면 대체로 이성을 잃는다.


연극 <타인>은 아주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이 한시적 동거를 하며 자칫 이성을 잃을만한 일을 매우 쿨하게 처리해 나간다. 부모도, 자식도, 연인도 아닌 묘한 관계 속에서 오히려 상대를 더 속깊게 들여다본다. 관계에서의 존재가 아닌 개별의 자아로 인정하며 타자화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러스트 디자이너 나츠는 연인 유우코와의 소박한 동거를 한다. 그러던 중 연인 유우코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유우코를 간병하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 하츠에가 도쿄에 온다. 딸이 나츠와 같이 사는 것을 알고 간병하는 일주일 동안만 신세를 지겠다고 한다. 설상가상 나츠의 전 연인 유우미까지 얽히며, 셋의 기묘한 한시적 동거가 시작된다.


이 기묘한 동거에는 거짓말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이 거짓말은 소동이 되고 이 소동은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덧붙이자면 나츠와 유우코는 동성 커플이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커밍아웃하지 않은 상황. 그런데 우연찮게 유우코의 어머니인 하츠에가 이들의 관계를 알고 너무나 쿨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던 나츠와 유우꼬는 아웃팅을 당하고 싶었을까? 쿨하게 이들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보통 사람들의 형식을 따르게하는 것은 정당할까?


웃음이 빵빵 터지는 가운데 소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담은 메시지는 묵직하다. 3명의 배우는 무대룰 꽉 채운 연기를 한다. 특히 하츠에 역의 장연익 배우는 일본 중년 여성 특유의 캐릭터를 잘 표현해 냈다. 극중 여러 캔의 맥주와 작지 않은 컵에 가득 담긴 물을 워샷을로 비운 유우미 역의 박지원 배우는 웃음 코드이자 중재자 역할을 재미있게 소화해내고 나츠 역의 정예지 배우는 누가봐도 남성화된 레즈비언같다.


암전이 매력적이고 공연 시작 전 안내 멘트가 공연이 시작된 후 진행되는 것도 참 신선했다. 요즘 암전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연극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극단 58번 국도는 희곡을 골라내는 안목이 좋다. 그 안목에는 소수자에 대한 애정과 존엄이 있다. <타인>이 그렇고 <비와 고양이와 몇 개의 가짓말>이 그랬다. 뿐만 아니라 2026년 창작산실 작품으로 이 극단의 창작극 <해녀연심>이 선정되었다고 하니 앞으로 창작극도 기대할만하다.


다케다 모모코 작 임예성 작

나옥희 연출 @koh_soohee

장연익 정예지 박지원 출연

극단 58번 국도 작품 @58route.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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