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우리에게 있었던 일, 연극 <팬데믹 플레이>
극장에 들어가 입장권을 받는데 건네준 것은 두툼한 KF94의 방역 마스크. 이 연극 <팬데믹 플레이>의 티켓이었다. 극장에 입장할 때 잠깐 썼는데 숨이 막힐 듯 답답했다. 불과 2년 전까지 피부처럼 여겼던 마스크인데 말이다.
‘창작집단 독’의 소속작가 9명이 다시 그 시절을 소환해 희곡을 쓰고 무대에 올렸다. 9명의 작가는 각자 사랑, 이별, 멸시, 연대, 죽음 등 팬데믹 기간에도 여기저기서 벌어졌을 일들을 무대에 올렸다. 거리를 둠으로서 선명해진 인간의 본성과 이기심 그리고 내면의 외로움은 더 적나라하게 보였다.
아홉 작가의 9편의 이야기는 떼어 넣고 보면 모두 다른 이야기이지만 섬세한 연출로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영리하게 구성되었다. 이 연결은 등장인물의 이름 부여로 가능했다. 극마다 다른 색깔을 가졌을 작품을 넓게 펼쳐진 무대에 올려 말이 되게 순서를 배치하고 등장인물의 이름을 다른 작품이지만 성별과 상황에 맞도록 부여했을 것이다.
독의 김현우 상임연출은 2014년 희곡모음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더 로스트>로 무대에 올리며 독립된 단편을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연출하는 실험을 했다. ‘팬데믹 플레이’는 김 연출의 11년 만의 시도이고 성공적이었다. 특히 유희경의 ‘사랑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극적 소고’와 고재귀의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는 마치 한 작품 같았다.
까마득한 과거 같지만 불과 2년 전에 전 세계는 코로나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언제 이런 상황에 놓일지 모르는 게 지구의 현실이다. 작품을 통해 만난 끔찍했던 그때의 이야기는 생경하고 무서웠다.
아홉 작가의 작품이 한 무대에 올려져 관객은 잘 쓰인 산문 같은 작품을 종합 선물 세트를 받은 기분이다. 모두 쟁쟁한 작가들 중 이번에 내 눈을 끈 작품은 천정완의 ‘숙주’다. 격리 중인 부부와 이 와중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 그 결혼은 영상 통화로 보며 누가 감염의 원인인지 밝히려는 무모한 다툼. 이것을 블랙 코미디로 만든 작가와 노련한 배우의 연기. 내 웃음 코드와 잘 맞았다. 오랜만에 송철호 배우 연기도 반가웠다.
파트 1
유희경 ‘사랑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극적 소고‘
고재귀 ‘우리는 만나지 않았다’
김태형 ‘파인 다이닝’
조인숙 ‘새벽, 호모 마스쿠스’
파트 2
조정일 ‘순대만 주세요’
천정완 ‘숙주’
김현우 ‘안전지대’
박춘근 ‘피시알이 너를 찾아올 때’
임상미 ‘빈소’
이렇게 적고 보고 사랑의 시작부터 생명의 잉태 결혼 갈등 죽음까지 아주 일목요연하게 엮었구나. 대단한 옴니버스 구성이다.
창작집단 ‘독’ 작품 @theaterdock
글 맛이 좋은 작품이다. 희곡집 ‘팬데믹 플레이’도 있으니 읽어보시라.
@from.rightseason
출연
이성희 김벼리
김동율 김세영
이주영 정지인
정해룡
송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