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을 만난 이철희 연출의 수작
극장에 들어서면 배우들은 극이 시작되기 전 어두운 무대에 동물과 식물 등 자연을 연기하며 관객을 맞이한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관람 모드가 된다. 어두운 무대는 허허벌판 같기도 하고 비가 새는 낡은 연습실 같기도 하다.
연극 <삼매경>은 함세덕의 <동승>을 이철희 연출이 재창작했다. 지춘성 배우는 1991년 <동승>에서 동승으로 출연했다. 1991년 동승 지춘성 배우는 2025년에도 그 동승에서 벗어나지 못한 초로의 배우를 연기한다. 이철희 연출은 한 배우의 과거, 현재, 미래에 연극이 갖는 상징성과 연극인의 고민을 모두 담았다. 그래서 어쩌면 이 작품은 연극인 이철희의 자기 독백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은 함세덕 원작을 밑그림으로, 그 극을 연기했던 배우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 당시 자신 연기의 부족함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갖는 여러 정신적 혼란을 얹은 극 중 극 형태이다. 배우는 1991년 연습실, 현재 그리고 미래 엄마와 상봉한 구천 어디인가를 종횡무진 오가며 연기한다.
자연과 정신적 혼란과 고요 등은 배우들의 군무로 표현된다. 느린 박자에 매우 절제되고 손가락 움직임까지 맞춘 배우들의 정확한 연기에 연극을 보는 동안 나는 깊은 숲에도 있었고 엄청난 혼란과 고요 속에도 놓인 기분이었다.
이철희 연출은 <삼매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은 단일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동승〉의 세계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상상적 미래의 이야기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그래서 관객은 1991년에 〈동승>을 준비하던 연습실로도, 2025년 현재의 리허설 현장으로도 이동하고, 또 연극 속의 연극이라는 메타적 세계도 경험한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지춘성'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실패에 대한 기억, 연극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삶과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이 모두 녹아 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선형적이라고 생각지만 인간의 의식과 마음 안에서 시간은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의 혼란은 동시에 작동한다. <삼매경>은 그 복잡한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풍경을 무대 위에 펼쳐놓은 작품이다.”
이철희 연출은 한국의 고전 및 근 현대 희곡을 찾아 오늘의 언어로, 오늘날 배우들의 몸으로 다시 해석해 보고 싶다고 한다. 이미 여러 편 그렇게 해왔다. 그래서 나는 벌써 그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
단순하지만 여러 함의를 담은 무대 때론 과감한 조명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국립극단 시즌 단원과 극단 코너스톤의 주요 배우가 몸으로만 표현해 내는 자연은 환상적이다. 조성윤 배우는 어린 도념을 연기하기 위해 삭발했을 것이다. 홍지인 배우의 새소리는 아름답고 코너스톤 배우들은 자신감과 여유 위에 그들 특유의 유머를 얹어 연기한다. 다만 주연 배우의 독백이 무척 많은데 종종 자막이 없으면 들리지 않아 아쉬웠다.
8월 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가 양념처럼 뿌려진, 소극장 무대를 벗어나 큰 무대에서 전문 스텝들의 지원을 받아 만든 완성도 높은 이철희 스타일을 꼭 만나보시길 바란다. 취소표가 조금씩 나오고 후반 회차는 아직 몇 석 남았다.
원작 함세덕
재창작• 연출 이철희
무대 이태섭, 조명 김창기, 움직임 이경구
출연
지춘성 곽성은 김신효 서유덕 심완준
윤슬기 이강민 정주호 정홍구 조성윤
조영규 조의진 홍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