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묻자, 우리에게 왜 같은 일이 반복되는지
긴 운문 혹은 산문시 같은 연극이었다. ‘시로 연극을 만든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고 배우들의 말을 텍스트로 읽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했던 연극이었다.
23세 전역을 한 아성은 아버지가 반장으로 일하는 평택항 검역소에서 일용직 알바를 한다. 퇴근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간 검역소에 다른 업무 요청이 온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아성은 외국인 노동자(한인) 고래 아저씨와 현장에 투입되고 그대로 사고를 당해 숨이 멎는다. 숨이 멎던 그 순간 아성은 수능을 마친 후 친구들과 놀며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떠오른다. 숨이 멎은 아성은 자기와 같은 신세인, 폐기물 처리장에서 일하다 돌연사를 맞은 무명과 만난다.
무명과 만나 숨이 멎기 1분 전, 10분 전, 16분 전 그리고 고래 아저씨의 하루 전까지 아성과 또 다른 산업재해 사망자 무명은 죽음에 이른 순간들을 소환해 낸다. 그 안엔 산업재해의 고질적인 패턴이 그대로 드러난다. 원청, 하청, 하청의 재하청으로 현장은 관리 감독되고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으로부터 사라진다.
이 작품은 2021년 4월 평택항에서 일어났던 실제 산업재해를 다뤘다. 뉴스 한 꼭지로 지날 수 있었던 이 사건이 하수민 연출의 눈에 밟힌 것은 사고 당사자가 아버지와 같이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하수민 연출을 평택항으로 이끌었다. 항이지만 거대한 콘크리트 벽에 가로막혀 바다도 보이지 않고 바람도 느낄 수 없었다. 그 막막함에 하수민 연출은 이 사건을 희곡으로 쓰기로 하고 사고 당사자인 선호 씨의 아버지에게 정중한 편지를 보내고 작품이 되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너무나 일상적인 그 현장이 슬펐다. 그곳은 이야기를 통해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는 데 그치지 않고 청년의 꿈과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박스로 단순화된 무대는 항이지만 구름도 바다도 보이지 않는 잿빛이다. 그 자리에서 일하는 이들은 위로받을 자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 황량한 무대에서 배우들은 스스로 지게차가 되어 연기한다. 매우 절제된 표현은 극을 문학적으로 보이게 하고 시로 느껴지게 한다. 사건의 참혹함과 별개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수민 연출은 현대사의 실제 이야기 연극으로 다룬다. 그 안에서 시간을 쥐락펴락하는 재주가 탁월하다. 죽은 자의 시선으로 ‘왜 죽었나?’를 끊임없이 묻는 이 작품도 그렇다. 지난해 서울희곡상을 받은 작품으로 9월 28일까지 대학로 쿼드에서 상연 중이다. 아름다운 희곡 시적인 연출의 작품을 깊게 꼭 보시길 바란다. 엔드 월은 이후 선호 씨 아버지의 시선에서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 <수평선>과 연결될 예정이라고 한다.
하수민 작연출
드라마터그 이성곤
안무 이세승
출연 마광현 홍철희 손성호 장재호 김영선 심민섭 황규환 이창현 이경우 엄태호 윤희지
무대 디자인 남경식
음악 음향 디자인 지미세르
조명디자인 최보윤
제작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쿼드, 즉각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