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화 캐스팅 전석 매진 연극 《술 취한 사람들》

진실은 왜 술에 취했을 때만 말해지는가

by 소행성 쌔비Savvy

러시아 극작가 이반 비리파예프의 희곡 《술 취한 사람들》은 겉으로 보면 술에 취한 사람들의 코믹한 밤 이야기처럼 보인다. 신경수가 연출한 이 작품의 핵심은 코미디보다 인간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상태와 내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어느 밤의 도시 영화제 감독, 사업가, 평범한 시민, 연인들처럼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인물들이 술에 취한 채 등장한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들은 우연히 만나거나 엇갈리며 밤을 지나간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취객의 넋두리는 점차 사랑, 신, 두려움, 존재의 의미 같은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술에 취한 언어의 비틀린 리듬 에는 쓸쓸함과 영적 공허가 묻어있다.


드라마에서 활약하는 신경수 연출은 매우 철학적인 텍스트를 무겁게 끌고 가지 않는다. 대신 현실적인 연기 톤과 배우들의 앙상블을 강조한다. 무대는 비교적 단순한 공간이지만 배우들의 이동과 장면 전환이 빠르게 이어지며 도시의 밤을 구성한다. 각각의 인물들이 다른 장소에서 고백을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하나의 합창처럼 이어지는 구조는 이 작품이 개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집단적 고백극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CR태규 기타리스트의 라이브 연주도 정말 좋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울리는 기타 연주는 단순한 전환 음악을 넘어 공연의 감정적 리듬을 형성한다. 인물들의 대사가 끝난 뒤 짧게 이어지는 기타 선율은 장면의 여운을 확장시키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마치 술기운이 번지는 것 같은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블루스처럼 느슨하고, 때로는 록의 리듬처럼 날카로운 이 연주는 취객들의 불안정한 상태를 소리로 번역한다. 특히 장면 사이의 침묵을 음악이 채우면서 공연은 단순한 드라마라기보다 밤의 도시를 떠도는 연극적 콘서트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배우들의 연기는 압권이다. 비틀거리며 등장해 꽈당하고 권은혜 배우가 넘어질 때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윤제문 배우는 정말 최고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 그의 움직임은 회사 부장님 같기도 하고 잘난척하는 교수 같기도 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익숙한 배우들과 연극배우들이 모두 과장되지 않고 현실 속에서 볼 수 있는 취한 상태의 연기를 펼친다. 이들의 생생한 현실적 연기에 작품 속 철학적 문장들이 선언적인 대사로 들리기보다 술에 취한 인간이 우연히 흘려버린 진실처럼 들린다.


이 작품에서 술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술은 사회적 가면을 벗기는 장치다. 사람들은 평소 직업과 체면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만, 취한 순간 그 질서가 무너진다. 그리고 바로 그 틈에서 인간은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을 꺼낸다.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가.” “나는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가.”


신경수 연출은 이 거창한 철학적 질문을 설명하지 않는 다. 배우들의 몸, 취한 상태의 언어, 그리고 장면 사이를 흐르는 기타의 선율 속에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웃음으로 시작한 장면들이 어느 순간 묘한 울림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석 매진이란다. 연기자들이 많이 출연하는 만큼 그들을 응원하는 동료 연기자들의 응원 관람도 볼만하다.


이반 비리파예프 작

신경수 연출

민진웅, 윤제문, 황영희, 조희봉, 손호준, 이호열, 김태향, 권은혜 @hiro_860501 , 김희정, 정혜성, 노혜주, 윤감송, 윤예솔, 김낙연 출연

음악 및 연주 CR태규

잡담 작품 @jab.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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