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하는 기억, 그러나 넘쳐버린 움직임의 아쉬움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

by 소행성 쌔비Savvy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은 집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말해지지 못했던 여성들의 삶과 기억을 끌어올리는 작품이다. 극은 딸 ‘나’의 시선을 따라 엄마, 화교 여성 ‘마마’, 그리고 이주 여성 꾸엔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사회의 경계에 놓인 존재들의 삶을 비춘다.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을 지닌 세 인물은 공통적으로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으며, 작품은 이들의 기억을 통해 ‘집’이라는 공간이 과연 누구에게 안식처가 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곤 연출은 이러한 이야기를 전통적인 대사 중심의 서사 대신 몸의 움직임과 안무 중심의 무대 언어로 풀어낸다. 무대 곳곳에서 반복되는 집단적 움직임과 리듬감 있는 동작들은 인물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려는 장치로 보인다. 음악과 결합된 장면들은 감정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며 작품의 감각적인 결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이러한 움직임 연출이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서사가 차분히 이어져야 할 장면에서도 동작이 강조되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잠시 끊기는 인상을 주었다 희극적이기까지 했다. 표현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때로는 ‘굳이 이렇게까지 많은 움직임이 필요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음악과 의상 등으로 이렇게까지 시대성을 강조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작품은 화자인 곽지숙 배우가 중심을 단단하게 붙잡는다. 과장된 감정보다는 절제된 호흡과 섬세한 표정으로 인물의 내면을 차분히 쌓아 올린다. 특히 움직임이 많은 장면 속에서도 인물의 감정선을 잃지 않는 집중력이 인상적이다. 작은 시선 처리와 미묘한 몸의 긴장만으로도 인물의 기억과 감정을 전달하며 무대에 깊이를 더한다.


「내가 살던 그 집엔」은 역사와 사회 속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의 기억을 무대 위로 불러오는 작품이다. 다만 강하게 강조된 움직임 연출이 때로는 서사의 여백을 덮어버리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곽지숙 배우가 보여준 섬세한 표현 덕분에 작품이 지닌 감정의 결은 끝내 관객에게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가끔 배우 한둘이 살리는 작품을 만난다. 그런 작품을 보고 나면 다소 기운이 빠진다. 배우가 너무 소비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화를 해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방법을 배우에게 의지했다는 생각 그것이 쥬는 아쉬움이다.


마정화 작 이곤 연출

곽지숙 @ji.sook._kwak 정다함 심연화 전형숙 김영준 이상홍 안병식 이승혁

극단 적 작품 @geukdan_jeock

#창작산실올해의신작 @arkose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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