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해녀 연심>_김민정 작 나옥희 연출
나옥희(배우 고수희의 극작가, 연출가로의 이름) 연출이 이끄는 ‘극단 58번 국도’의 대부분의 작품을 보았다. 이 극단은 주로 일본의 작고 따듯한 희곡을 발견해 무대에 올렸다. 김민정 작, 나옥희 연출의 <해녀 연심>은 이 극단이 직접 작품을 개발, 낭독 공연을 거쳐 창작산실에 응모해 올해의 신작에 선정되었다. 많은 창작자가 원하는 모범의 방식을 따른 순도 100프로의 창작극이다.
<해녀 연심>은 제주 4·3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해녀’라는 구체적 존재를 통해 호명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오랜 시간 공적 서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어 온 여성 피해자의 목소리를 무대 위로 생생하게 불러내며 출발한다. 특히 생계와 공동체를 동시에 떠받쳤던 제주 해녀들의 삶을 중심에 둠으로써, 국가폭력의 기억을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닌 ‘살아낸 몸의 역사’로 환기한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한 해녀 연심은 4·3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린 딸 딸 수자를 제주에 둔 채 큰딸 화자만 데리고 오사카 츠루하시로 도망간다. 무일푼으로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외국에 사는 여성의 삶을 연극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다. 시간을 견디며 현재와 과거, 현실과 기억이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 인물은 반복적으로 바다로 향하며 사라진 이들을 호출한다. 이때 ‘연심(戀心)’은 연애 감정이 아니라, 잃어버린 존재와 세계에 대한 지속적인 애도의 감정으로 확장된다.
나옥희의 연출은 서사를 과잉 설명하기보다, 신체와 리듬을 통해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배우의 호흡, 물질적 소품의 최소화, 그리고 반복되는 동작은 해녀의 노동과 기억을 동시에 상징한다. 특히 물속을 잠수하는 듯한 몸짓과 정지된 침묵의 순간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공포와 상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는 4·3을 ‘말해진 역사’가 아니라 ‘말해지지 못한 감각’으로 재현하려는 연출 의도로 읽힌다.
작품에서 여성은 더 이상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다. 오히려 기억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주체로서 자리한다. 해녀의 몸은 생존의 기술을 담은 동시에, 억압된 역사를 견디고 증언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특히 공동체적 여성 연대가 은근하게 드러나며, 개인의 비극이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결국 『해녀 연심』은 4·3을 ‘거대한 서사’ 대신 ‘작은 목소리’로 선택한다. 나옥희 연출의 고집스러운 선택이다. 그 선택은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바다라는 공간, 여성의 몸, 그리고 반복되는 애도의 리듬 속에서, 이 작품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묻는다.
바다처럼 깊은 무대에서 배우들은 제주어와 일본어로 연기한다. 80의 노인이 과거를 회상하며 12살과 7살 아이로 연기하는 장면은 다소 우스꽝스러운데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많은 작품이 거대한 이야기를 어렵게 풀어낼 때 작은 이야기를 과장 없이 현실어로 설명할 때 연출도 작가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극단 58번 국도와 나옥희 연출은 그 용기를 갖고 나아갈 것이다. 다음 작품은 어떤 작고 소중한 이야기일까?
김민정 작
나옥희 연출
귄지숙 김기강 박완규 김소진 서옥금 이혜미 김해서 정수연 출연
이태섭 무대
신동선 조명
극단 58번 국도 작품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