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다른 시선 연극 <키리에>

by 소행성 쌔비Savvy

장영 작, 전인철 연출 한 연극 <키리에>는 죽음을 대놓고 이야기한다. 독일의 검은 숲, 죽으러 온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바로 그 숲 근처에 집 하나가 있다. 천재 한국인 여성 건축가가 기존 집을 허물어 다시 설계하고 지은 집이다. 명성을 얻었으나 30대에 과로사하고, 그의 영혼이 그가 설계한 이 집에 깃든다. 그의 영혼은 외로운 집에 25년 동안 갇혀서 끝없이 과거의 부족한 기억들을 형벌처럼 곱씹고 있다.


비가 내리는 봄, 엠마라는 60대 한인 무용수가 근육이 굳어가는 전직 무용수 남편과 함께 그 집에 쳐들어온다. 평생 남편의 병간호를 하며 살던 엠마가 남편의 죽음을 연습하기 위해, 혹은 유예하기 위해 외딴 마을에 있는 건축가의 집을 사서 남편과 함께 온 것이다. 엠마는 이 집을 스스로 죽으러 가는 사람들이 결단의 순간까지 머무를 수 있는 여관으로 만들어 돌보기 시작한다.(프로그램 요약)


작가 장영은 <키리에>는 인간과 동물과 건물의 퀴어 러브스토리이며 인간과 동물과 건물이 서로를 힘껏 안고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기존의 삶으로부터 추방되고 내몰린 자들이 죽기 위해 찾아간 타국에서 한없이 약해진 에고(ego)들에게 찾아오는 탈존의 구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극적인 반전보다는 기억의 파편과 감정의 반복에 가까운 구조를 취하며, 이를 통해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지속되는 관계의 또 다른 형태임을 암시한다. 죽음을 금기나 공포의 대상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정면에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인물들이 죽음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재인식하는 장면들은 상실 이후에도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감정의 결이 단선적으로 유지된다는 점은 한계로 작용한다. 다양한 애도의 방식이나 복합적인 감정의 충돌보다는 일정한 정조가 반복되면서, 죽음이라는 주제가 지닌 다층성이 평면화되었다.


연출 역시 이러한 특징을 강화한다. 무대는 최소한의 장치와 단순한 동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연극 튤립의 검은 무대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나? 튤립과 키리에의 무대 연출은 같은 무대처럼 보였다) 인물들은 특정한 상징적 위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평면적 연출은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텍스트와 정서에 집중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장면 간의 긴장이나 공간적 변주가 제한되면서, 극적 밀도의 확장이 어렵다. 결과적으로 <키리에>는 죽음을 사유의 대상으로 환기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그 감정과 형식을 입체적으로 확장하진 못했다(그래서 졸았다). 그래서 내겐 ‘자살 권유극’처럼 보여 너무 우울했다.


정동 세실극장의 단차는 최악이다. 2열에 앉아서 앞 좌석 관객의 어깨 사이로 보느라 고개를 좌우로 기울여야 했다. 게다가 누워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서 아주 힘겹게 보았다.


집으로 분한 최희진 배우의 독백이 끝나고 엠마 부부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신선했다. 최희진 배우는 죽은 희곡도 살려내는 연기를 하니 당연했다. 그러나 강아지를 잃고 온 소설가가 등장하면서부터 극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야기에는 동의하기 어려웠고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이 너무 비슷해 힘들었다. 2023년 동아연극상 수상작이란 라벨에 낚였다(개취).


장영 작, 전인철 연출

최희진 유은숙 백성철 조어진 윤경 출연

극단 돌파구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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