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씻는 남편과 덜 씻는 아내
씻으려 물을 트니 온수 방향에서 찬물만 콸콸 나온다. 그 어떤 에러 코드도 없이 따듯한 물이 안 나온다. 사람이 그러하듯 물건도 오래 사용하면 여기저기 한 가지씩 부품이 고장이 난다. 네 해째 겨울을 맞이하는 기름보일러의 어느 부분도 고장이 난 모양이다.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수리를 요청하고 출근을 한다.
출근길 버스 정류장 앞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보일러 상태를 얘기하고 오늘 머리를 못 감은 지 3일 째라고 하니 자기는 아침마다 감는데 어떻게 3일 동안 머리를 안감을 수 있냐고 놀린다. 난 나대로 어제 일요일였으니까 머리를 감을 필요가 없었다고 맞섰다. 난 평균보다 씻기를 싫어하고 남편은 지나치게 씻는다. 내가 씻지 않고 자려하면 더럽다고 놀리고 난 너무 자주 씻지 않는 게 내 매끈한 피부의 비결이라 답한다.
집에 들어가 피곤이 마구 몰아칠 때는 정말이지 씻고 싶지 않다. 씻으면 피곤이 날아갈 것이고 그럼 잠에 드는 시간이 늦어지는데 이것이 싫기 때문이다. 반면 남편은 씻으며 피곤이 풀리고 그래야 개운해서 더 잠을 잘 자게 된다고 한다.
이런 우리의 차이는 목욕탕에서 머무는 시간에서도 차이가 난다. 나는 씻고 외출 준비를 하는데 고작 15분에서 20분이면 된다. 반면에 남편은 씻고 볼 일을 보고 또 씻고를 반복한다. 정말 웃긴다. 그래서 언제나 외출 준비에 나보다 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른 집에선 남편이 준비를 마치고 아내를 기다린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완전 반대다. 그렇다고 남편이 엄청난 멋쟁이이냐? 그건 또 아니다. 남편의 패션 센스는 거의 테러 수준이다. 색깔 조합을 무시하는 것은 기본, 소재에 대한 개념도 없다. 그래서 대체로 내가 옷을 챙겨주어야 한다. 본인도 이제는 이게 편한지 가끔 내게 이렇게 입으면 되겠냐고 묻는다.
이런 '패알못'센스는 이번 제주 여행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한 달을 지내겠다며 옷을 싸는데 계절도, 제주 날씨도 별로 고려하지 않고 여름 티셔츠와 얇은 겉옷만 챙기기에 잔소리를 하고 옷을 더 챙겨줬다. 옷을 너무 얇게 가져간다고 뭐라 했더니 충분하다고, 자신은 추위를 안 탄다고 답했다. 까칠하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사실 나는 남편의 이런 무던함이 참 좋다.
그건 그렇고 사실 남편이 있어도 온수가 안 나오면 내가 해결해야 한다. 남편은 온수가 안 나온다고 하면 일단 나와 같이 걱정은 하지만 뭔가 해결책을 내놓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일 오후엔 보일러 수리 기사가 올 것이고 그럼 이전처럼 온수는 또 콸콸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