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순 <사피엔스의 식탁>
인간은 먹고 살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이 노력은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금 우리 식탁은 긴 시간을 거친 전쟁의 결과이다.
소금의 발견으로 우리는 음식을 조금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 소금 제조 방식인 자염 생산은 일본이 더 많은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천일염으로 대치되었다. 식탁의 주권이 권력에 의해 옮겨진 것이다.
생선을 더 많이 먹기 위해 양어장의 생긴 것이 그리스로마시대였다니 정말 놀랍다. 필요는 욕심을 낳고 이것은 곧 탐욕이 되어 자연 질서를 어지럽힌다. 인간의 탐욕으로 바구니로 뜨면 잡히던 대구도, 고래도 더 이상 예전만큼 잡을 수 없다. 결국 인간의 탐욕에 바다가 경고를 보낸 것이다.
서로마제국, 콘스탄틴노플, 베네치아, 포르투갈, 네델란드, 영국으로 이어진 향신료 패권은 세계사 권력의 이동과 같이 한다.
설탕을 얻기 위해 플랜테이션이 그리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 노예제도가 등장했다. 이런 제도는 부자를 더욱 부자로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 했다. 무엇보다 설탕에는 산업화를 지탱해 온 도시 빈민 노동자와 이유도 모르고 끌려와 힘든 노동을 해야했던 노예들의 아픔이 깊이 배어있다.
기호식품에 대한 인류의 탐닉은 노동착취, 약탈, 전쟁, 멸종이라는 오점을 남기고 있다. 이런 인간의 태도를 볼 때 인간은 분명 살기위해 먹는 것이 아닌 먹기위해 사는 것이 분명하다.
설탕과 카카오를 얻기 위해선 노예제도가 성행했고, 커피는 한쪽에선 사치품였지만 노동자에겐 각성제가 되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초코렛은 카카오 농부의 열악함은 무시하고 모든 가격 정책을 대자본이 쥐고 흔든다.
이런 모순을 타파하지 않고선 인류는 같이 살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기호를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선 안된다.
책을 읽어갈수록 인간은 먹고 살기위해 너무 많은 죄를 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먹지 않을 수 없으니 먹더라도 알고, 좀 착하게 먹어야겠다.
무엇보다 육류소비에 대해선 생각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비건이 되자는 것은 아니다. 먹어야한다면 동물권도 좀 생각하고 먹자. 아니 너무 많이 먹지 말자.
<깨어있는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진짜 힘은 소비자에게서 나온다> 이 책의 결론은 이것이라 믿는다. 깨어있는 트렌드를 만드는 힘있는 소비자가 되어야 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게 된다.
슬로우푸드, 로컬푸드, 공정무역에 더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해야겠다.
유기농에 대해선 전체적으로 찬성이지만 아주 저극적이긴 어렵다. 유기농 마크 하나를 위해 농가가 부담해야하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