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지 10년, 결혼한 지 8년 된 부부의 결혼기념일

먹고, 걷고, 마시고 , 요리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빼곡히 했네

by 소행성 쌔비Savvy

2021년 5월 25일은 8번째 결혼 기념 일였다. 보통은 여행지에서 아침을 맞았는데 지난해부터는 집에서 맞이하고 있다. 새벽에 눈을 떠 잠자리에서 누워 놀다가 기념일마다 찍는 아침 베드신 사진을 찍고 아침을 해서 먹었다.


남편이 결혼기념일이니 삼청공원에 가자는 매우 이상한 요구를 해서 집에서 나와 성북동 성곽길을 걸어 삼청공원에 갔고 삼청동에서 선물 받은 커피 쿠폰으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업무 통화(강의 일정 조정과 드라마 제작사 미팅 보고)를 하고 청와대 앞을 지나 서촌으로 걸어갔다.


서촌에 가면 늘 그렇듯 서촌 터줏대감 김성준 선배께 전화를 드린다. 낮술을 마시자 했더니 시간이 너무 이르기도 하고 어제 너무 많이 마셔 오늘은 힘들다 하셔서 술집 정보만 얻고 전화를 끊었다.


결혼기념일 맞이 낮술은 오후 3시부터였다. 서촌에서 그 시간에 영업하는 술집은 <안주마을>이라는 정보를 얻고 술집을 향해 바삐 걷는데 성북구에서 용산구로 거처를 옮긴 독일 유학생 조나단을 길에서 만났다. 밥 먹으러 가는 길이라기에 우리랑 술 마시자고 했더니 전날 과음을 해서 어렵다고 했다. 그럼 우린 술 마시고 조나단은 밥을 먹으라고 꼬셔서 같이 안주마을로 갔다.


우리 마실 한라산과 조나단이 먹을 공깃밥과 두부명란탕을, 안주로는 낙지볶음을 주문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조나단은 예약해 둔 미술관으로 갔고 우린 딱 두 병만 마시기로 했는데 고등어 구이와 계란찜을 시켜 결국 네 병을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기 직전에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왔다. 술을 마시며 잠시 마루 테이블 관련해 소영이와 통화를 했다. 술값 92,000원 택시비 7,200원은 내 카드로 계산했다.


집에는 오이 100개와 초당옥수수 10개가 도착해 있었다. 옥수수를 하나 꺼내 먹는데 남편은 잠이 들었고 나는 오이지를 담기 위해 오이를 닦고 소금물을 끓였다.


혹시 실수할까 봐 지난해 기록해 둔(작년 우리 집 오이지가 아주 좋았다) 오이지 요리법을 꺼내 다시 확인하고 오이를 세 통에 나누어 담고 소금물을 부었는데 소금물이 조금 모자랐다. 그러나 더 일을 하기엔 취기가 너무 올라와 잠을 잤다.


자다 눈을 뜨니 밤 12시 30분. 잠깐 정신이 멍했지만 오이지를 마무리하지 못한 게 생각 나 소금을 저울에 재서 농도를 맞춰 소금물을 끓여 부었다. 내가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남편도 일어났고 <무브 투 헤븐>을 보겠다고 하여 그러라 하고 아이스크림을 꺼내 주었다. 둘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무브 투 헤븐>을 보는데 마침 가장 슬픈 6편(노부부의 동반 자살 편)이 시작되었다. 난 울지 않으려 게임을 하며 보았다. 그러나 여지없이 눈물이 나서 그냥 ‘아이, 슬퍼’ 하면서 울며 보았다.


7편이 시작되자 남편은 자겠다고 텔레비전을 껐고 난 잠이 오지 않아 게임을 조금 하다가 결혼기념일 기록을 남기기로 하고 이 글을 썼다.


나쁘지 않은 매우 평온한 꽤 괜찮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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