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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 엄마의 기일

입추, 음력 6월 29일. 엄마 제사다. 원래는 6월 30일인데 올해 6월은 29일까지다. 이런 해엔 29일에 제사를 지낸다.


1939년 음력 6월 20일에 태어난 엄마는 1998년 음력 6월 20일 낮에 쓰러지셔서 이날부터 심정지와 거의 뇌사상태로 중환자실에 계셨다. 음력 7월 1일 구급차를 타고 집에 와서 의사 입회 아래 호흡기를 뗐다. 호흡기를 떼자 십 초도 안되어 엄마의 가는 호흡마저 사라졌다. 당시 의료계에 보라매병원 이슈가 있어 의사들이 병원에서 호흡기 떼기를 꺼려해 어쩔 수 없이 집에 와서 떼야했다.


엄마조차 엄마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 생일날 나는 갑자기 공석이 된 데스크 역할을 하느라 집에 내려가지 못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엄마의 기상 전화 통화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엄마는 늘 “일어났니, 일어나야지”라고 했고 나는 “어 일어났어.”하면 “밥 먹고 출근해야지”했다. 그럼 난 “알았어”라고 짧게 대답을 했을 것이다.


이 날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일어나 밥 먹고 출근해야지’했고 난 ‘엄마 생일인데 못 내려가서 미안. 주말에 내려갈게’라고 짧게 답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묘하게 다른 날과 기분이 달랐다. 통화는 다른 날보다 애틋했고 엄마의 음성은 한없이 따듯했다.


엄마와 이렇게 작별했다. 엄마 소식을 듣고 대전에 내려갔다 서울에 다시 올라와 급한 업무 처리만 하고 내려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당시 마룻바닥이었던 충남대병원 병원 중환자실 대기실에 앉아 엄마를 지켰다. 위로 언니 둘이 있고 아래로 동생들이 있었다. 아빠는 거동을 못하시는 상태였다. 큰 언니는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 중였고 작은 언니는 두 조카가 어려 아이를 봐야 했다. 동생들과 같이 교대를 했던 거 같은데 나는 거의 병원에 있었다.

엄마 기일 즈음이 되면 엄마가 꿈에 나타난다. 엄마는 언제나 젊고 언제나 편안하다. 그래서 꿈에 엄마가 나오면 참 좋고 안심이 된다.


집에서 지내던 내 생일은 음력 5월 17일인데 마흔이 지나면서부터 생일을 양력으로 기억한다. 내  양력 생일과 엄마의 음력 생일 날짜가 같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로 어려서 엄마와 떨어져 살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엄마 아빠와 같이 지낼 수 있었으니 내가 부모와 온전히 같이 지낸 시간은 딱 10년이다. 이 시간 동안 야무지다는 이유로 아빠는 나를 대놓고 미워하며 내가 공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난 오로지 엄마의 지원과 응원으로 대학까지 다닐 수 있었고 지금까지 당당하게 버티고 산다.


엄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서야 내가 엄마를, 엄마가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았다.


일 년 중 가장 뜨거운 그때 태어난 엄마는 뜨겁게, 짧게 살다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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