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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로 차린 덕적상회표 우리 집 젓갈정식

2021.11.25_안주로도 반찬으로도 맞춤한 식재료

사람과 사람이 연을 맺고 사는 일은 행복하고 따뜻하며 한편으론 무섭고 책임감을 갖게 되는 일이다.


어제 제주에서 돌아오니 집 대문간에 금색 보자기로 포장된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보낸 이 김민정, 받는 이 윤혜자 선생님. 김민정 시인께서 젓갈 세트를 선물로 보내신 것이다. 김민정 시인은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병간호와 회사 운영을 동시에 하며 이렇게 주위 사람도 살뜰히 살핀다. 난 김민정 시인이 잠은 자기라도 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의 살핌이 내게까지 왔다. <쌔비테이블>에서 추석 무렵에 삼베 이불을 팔았다. 그때 오랜 침대 생활에 계시는 시인님의 아버지 사용하시라고 삼베 이불을 한 장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이렇게 잊지 않고 챙기신 거다. 물론 그 일이 아니라도 김민정 시인께 늘 챙김을 받는다.


젓갈을 보내신다기에 나는 지체도 거절도 하지 않고 냉큼 열심히 맛있게 먹겠다고 답했다. 선물하시는 분의 성의를 물리는 것도 매우 실례라는 것을 내가 작은 선물을 하면서 얻은 지혜다. 선물은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 신나게 사용해야 준 사람도 뿌듯하다.


이렇게 내게 온 젓갈은 무려 7종이었다. 김 시인의 제부께서 인천 수산 시장에서 젓갈 도매업을 크게 하시는데 그곳 <덕적 상회>의 젓갈이다. 나는 3년 전부터 김장 때면 덕적상회에서 내린 액젓과 새우젓을 구매해 김장을 하고 때때로 젓갈을 사서 밥상에 올린다. 젓갈처럼 어려운 음식은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잘하는 집의 것을 사 먹는 게 여러모로 좋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우리 집표 젓갈정식이다. 멍게젓, 조개젓, 낙지젓, 가리비젓, 명태 초무침을 한 그릇에 담았다. 맨밥에 젓갈만 올려 먹어도 맛있지만 나는 깻잎에 밥 한 숟가락 그 위에 젓갈 한 조각 얹어 싸 먹는 것을 좋아한다. 이때 밥은 갓 지은 따근한 밥이 제격이다. 오늘은 쌀알이 크고 담백한 추청과 쌀알이 조금 작고 찰기가 있는 백진주를 섞어서 밥을 했더니 밥에 윤기와 찰기가 더 좋아져 젓갈을 얹어 먹기에 그만이다. 아, 쌀을 브랜딩하는 창의력을 발휘하다니, 내가 좀 멋지게 느껴졌다.


젓갈에 대한 창의성은 술에는 이미 오래전에 발휘되었다. 술안주로 젓갈을 종종 먹는데 이땐 양상추나 데친 두부에 젓갈을 얹어 먹으면 아주 좋다. 한동안 술안주와 반찬 걱정은 없겠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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