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7_혼자서도 잘 노는 하루
남편과의 두 번째 별거, 다이어트를 계획했지만 그것은 어렵고 대신 조금 자주 혼자 움직이고 있다. 오늘 낮엔 이헌준 선생님 어머니 그릇을 받기 위해 박재희 선생님이 다녀 가셨다. 나는 레몬 파스타를 준비했다. 여러 번 자주 했더니 이제 제법 맛이 잘 어울려 난다. 잘하고자 하는 음식은 손에 익어야 하고 그러려면 반복해야 한다. 반복할 땐 느낌에 의지하지 않고 정확하게 계량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스타 면도 예전엔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넣었지만 이젠 손으로 쥐어 보고 이것을 다시 계량한다. 면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검지로 한 묶음을 잡으면 85그램이라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2인 분의 파스타를 할 땐 건면 200그램을 사용한다. 그래서 남편에겐 60프로를 주고 내가 40프로를 먹는다. 오늘은 똑같이 나눴다.
레몬 파스타는 쉽다. 알리오 올리오에 레몬즙만 추가하면 된다. 레몬즙을 넣는 타이밍이 중요할 것 같아 여기저기 찾아보니 면을 넣기 직전에 넣어 마늘과 오일과 파슬리에 잘 섞는 게 포인트였다. 나도 그 방법을 따른다. 레몬의 양은 3인 분에 반 개가 적절했다. 작은 레몬이라면 2인 분에 반 개도 좋다. 그러나 과하면 절대로 안된다. 마늘도 파슬리도 레몬도. 레몬이 들어간 오일 파스타는 새콤하고 산뜻하다. 정옥씨는 파스타가 꼭 디저트 같다고 했다. 오늘 재희 선생님도 맛있게 드셨다. 샐러드도 준비했어야 했는데 게을러서 하지 못했다.
아침나절엔 세미씨가 오후엔 정옥씨가 들러 술과 과일 그리고 붕어빵 등의 선물을 주고 갔다. 좋은 이웃과 먹을 것을 나누며 사는 게 참 좋다. 나는 이들에게도 이헌준 선생님의 그릇을 나눠줬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들고 갔다.
저녁엔 김혼비 작가의 북 토크에 다녀왔다. 김혼비 작가는 근래 에세이스트 중 단연 돋보인다. 나는 그의 <아무튼 술>을 읽고, 그가 술을 좋아하며 우리처럼 보드카로 남편과의 연애를 시작했다는 사실에 괜히 동질감을 느끼며 혼자 좋아하고 있다. 이번 책 <다정소감>에선 제철음식 이야기를 하며 하지의 제철음식은 맥주와 감자칩이라는 기상천외한 의견을 냈는데 묘하게 동의되어 한참을 웃었다.
예전엔 에세이를 무시했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읽고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 쓰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빛나는 에세이를 읽기 시작하며 좋은 사람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세이야말로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써선 안된다는 확신도 들었다. 지난해에 읽은 좋은 에세이는 유병록 시인의 <그립소>, 요조 작가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이 작가들이 얼마나 따듯하고 섬세하며 다정한지를 알 수 있다. 아, 개그맨 김태균의 <이제 그냥 즐기려고요>를 읽으면 그가 얼마나 선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글은 그 사람을 숨길 수 없다. 나는 남편을 사귀기 전에 그가 쓴 글을 읽고 그가 좋은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쓴 글엔 보이지 않는 가시가 숨겨져 있고 읽는 사람은 결국 그 가시에 찔린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김혼비 작가의 북 토크가 끝나고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작가님의 사인 테이블에 우리 부부의 책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가 있어 놀랐다. 김혼비 작가님께서 우리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며 내가 북 토크에 오는 것을 알고 사인을 받으려고 가져오셨다고 했다. 매우 어처구니없는 당황스러운 상황였는데 정말 기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꼭 술 한 번 같이 마시자’는 제안에 무척 설렜다. 김민정 시인과 유성원 작가, 마선영 편집자도 북 토크에서 만났다. 하루에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난 좋은 날이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