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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와다에 소주 한 잔 하실래요?’로 시작된 연애

2022.02.09_<진심식당 다노신>에서 고노와다를 만나다

작년부터 연초에 잠깐 평소 내가 하는 일과 사뭇 다른 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동네 친구의 회사에 가서 이탈리아에서 냉장 배를 타고 도착한 햇 올리브 오일을 포장하여 선주문한 고객에게 발송하는 일이다. 유리병에 든 올리브 오일이 깨지지 않도록 포장하고 이것을 주문 상품과 수량에 맞춰 박스에 담고 운송용 송장을 붙인다. 비교적 단순한 일이지만 방심하면 물건이 바뀌어 도착해 구매자가 자신이 주문한 용량보다 크거나 작은 병의 오일을 받는다. 그러면 회사는 이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하니 두세 번 일이 된다.


월요일에 배송이 시작되어 고객은 화요일 저녁부터 올리브 오일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은 올리브 오일이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도착했다는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 내 실수가 많았던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좋은 동네 친구 사장님은 급한 일이 마무리되었다며 회식을 하자고 했다. 점심은 점심대로 신경 써서 먹이고 저녁은 또 저녁대로 회식을 제안하며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시급은 최상인 그야말로 ‘꿀 알바’다. 게다가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빳빳한 지폐의 신사임당 얼굴을 모두 맞춰 봉투에 담아 주신다. 실수를 연발한 주제에 내년에도 꼭 불러달라는 뻔뻔한 부탁을 했다. 동네 친구 사장님은 얼마든지 더 싸고 더 일 잘하는 사람을 쓸 수 있지만 나 같은 미숙한 아르바이트생을 내년에도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년에는  박스에 테이프도 더 이쁘게 붙이고 단 한 건의 실수도 없이 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무튼 급한 일이 대충 마무리되어 나의 아르바이트는 끝났고 우린 회식을 했다. 안내받은 음식점은 성신여대 근처 <진심식당 다노신>였다. 아니, 여기는 내가 종종 다니던 이자카야 아닌가! 대학로에서 이사를 했다는 소식만 듣고 새 장소엔 한 번도 와보지 못했다. 다노신 신용호 요리사님은 음식 인문학을 공부하던 ‘끼니’의 맛 칼럼니스트 과정 3기 수강생이어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나는 4기). 이 분은 음식과 사케에 진심이다. <다노신>이 대학로에 있을 땐 종종 다녔는데 성신여대 쪽으로 이사한 후론 찾아가야지 마음만 먹었을 뿐인데 동네 친구가 종종 다니는 곳이라며 안내해 무척 반가웠다.


우니 삼합을 시작으로 술과 안주를 신나게 먹었다. 안주가 남으면 술을 시키고 술이 남으면 안주시키기를 반복하다 동네 친구며 나의 아르바이트 회사 사장님은 우니 삼합에서 남은 광어회와 같이 먹겠다며 ‘고노와다’를 외쳤다. ‘고노와다’, 이 얼마나 반가운 음식인가! 11년 전 5월 23일 나는 ‘고노와다에 소주 한 잔 하실래요?’라는 문자로 지금의 남편에게 미끼를 던졌고 그  미끼를 덥석 물고 그가 했던 말은 ‘고노와다가 뭔지 궁금해서 나왔다.’였다.


고노와다는 해삼의 창자다. 해삼은 위기에 직면하면 창자를 방출하여 위험에서 벗어난다. 이 창자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다. 고노와다는 창자에 있던 개흙을 제거하고 만든 젓갈이다. 손질이 까다롭고 비릿하고 미끄러운 식감 때문에 호불호가 있지만 나는 고노와다에 한치나 광어회를 비벼 먹는 것을 좋아한다. 문제는 맛있는 고노와다를 내놓는 집이 흔치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연히 오랜만에 들른 <진심식당 다노신>에 고노와다가 있었다. 고노와다 주문에 탄성을 지르고 나의 연애 작업기를 얘기하다 자리를 마무리하고 일어나 집에 왔다.


입 안에 남은 갯내음과 비릿한 맛이 너무 좋았다. 남편이 청주에서 돌아오면 고노와다에 소주 한 잔 하러 다노신에 가자고 해야겠다. 물론 내가 쏜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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