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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담그기를 가르쳐주는 즐거움

2022.02.19_장도 익고 우리 사이도 익어가자고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있다. 내게 크게 이득을 주는 일고 아니고 하지 않는다고 큰일이 나는 것이 아닌 일 그런데 하면 신나고 뿌듯한 일 그것은 바로 장 담그기를 전파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장을 담근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돕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 지난해 늦가을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작가 Y는 집에 테라스가 있다며 장을 담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좋다. 내가 도와주겠다 선언을 하고 메주를 구입하고 당근에서 적당한 항아리를 찾아서 링크를 보내줬다. 드디어 장 담그는 날 난 메주가 뜨지 않도록 사용할 조릿대를 들고 그의 집으로 갔다. 그는 맥주를 한 병 따서 마시고 있었다. 나에게 ‘장 담그는 게 너무 좋아서 낮술을 한 잔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난, 장을 담근 후 마셔야지 담그기 전부터 마시냐 웃으며 대꾸했다. 그는 자신이 좀 웃기다고 생각했는지 쑥스럽고 귀여운 표정으로 웃었다.


물을 끓여 항아리를 소독하고 메주를 닦아 물을 빼고 큰 항아리에 물 20리터 소금(정제염) 4킬로를 넣고 녹인 후 메주를 소금물에 담갔다. 메주를 항아리 넣는 곳은 반드시 장의 주인이 하게 한다. 소금물에 메주를 넣는 게, 그게 인생 첫 경험이라면 매우 떨리고 벅차다. 그 좋은 기억을 나는 성급한 마음에 뺏고 싶지 않다. Y가 메주를 넣을 때 난 카메라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마지막 메주를 넣고 Y는 손뼉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나는 장을 가를 땐 먹을 것도 준비하고 남자 친구도 같이 하자고 했다. 가를 땐 더 재밌으니까.


간장은 몇 천 원만 들고 동네 상점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담근 장은 최소 1년 적어도 2년 후부터 제 맛을 낸다. 그러니 장을 직접 담가는 것은 무척 비효율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직접 밥을 지어먹어봐야 밥을 하는 과정을 알고 맛있는 밥의 조건을 알듯이 장도 마찬가지다. 장을 담근다면 된장요? 아니면 간장요? 하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그들은 된장과 간장이 한 항아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소금물에 담근 메주를 두어 달 후 꺼내 잘 부숴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키면 된장이 되고 메주가 담겼던 소금물을 잘 걸러 다른 항아리에 넣고 숙성시키면 간장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당연하다. 본 적도 없고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장을 담가먹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장을 담그기 전과 후로 식생활에 변화가 생긴다. 자신이 담근 장이 잘 익어 그 장으로 음식을 하기 시작하면 냉장고 포켓에 자리 잡고 있던 다국적을 소스병들은 하나 둘 줄어들 것이다. 단순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한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담가먹는 장의 효용을 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장을 담그고 싶다면 정말 기쁜 마음으로 돕는다. 장을 담그기 시작하면서 음식의 새 장이 열린다는 것을 알기에.


친구 Y의 장이 잘 익기를 바라며 이 장을 핑계로 우리 사이도 잘 익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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