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정월 대보름 음식 러버의 나물 조리법

2022.02.14._밸런타인 데이보다 정월대보름

명절을 챙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듯 명절 음식을 챙기지 않는다. 추석 음식 송편은 심지어 싫어한다. 맵쌀 가루를 두툼하게 하고 그 안에 맛도 간도 없는 콩을 넣어 만드는 송편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잘 모른다. 설음식 떡국 역시 별로다. 떡국 속 떡을 끝까지 씹어 삼키는 게 난 참 어렵다. 명절이면 패키지처럼 따라붙는 전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전은 부칠 때 옆에서 몇 개 집어 먹는 게 좋다. 식은 전을 다시 부쳐 먹는 것은 좀 서글프고 남아서 냉동실에 있던 전을 꺼내 찌개로 까지 만들어 먹은 적은 단 한 번고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내가 유일하게 챙기는 음식은 정월 대보름 오곡밥과 묵나물이다. 물론 정월 대보름은 명절은 아니다. 그러나 내겐 정월 대보름 음식이 다른 명절 음식보다 더 마음에 들고 좋아한다. 그런데 이 음식은 여러 사람과 같이 먹어야 더 맛있다. 할 수 있다면 정월 대보름 음식을 같이 먹는 모임이라도 만들고 싶은데 음식을 나누고 싶은 사람 중에 이런 내 맘과 같은 사람은 없을 테니 그냥 남편과 열심히 해 먹어야겠다. 그런데 올해는 남편과도 같이 먹을 수 없어 건너뛰려 했다.


그런데 내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민주씨다. 지난번 인왕산 만남 후 민주씨 집에서 식사를 하고 우린 정월 보름 경에 만나기로 했다. 날짜를 체크하니 민주씨도 오늘 좋다고 했다. 아침에 냉동실에 있던 고사리를 꺼내고 호박고지, 가지나물 고지, 건표고버섯을 꺼내 물에 불리기 시작했다. 둘이 먹을 분량만큼의 나물은 있었다. 시래기나 말린 나물을 한두 가지 살까 하다 시금치만 한 단 샀다. 민주씨가 가면 안 먹을 게 뻔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음식을 배우가 전엔 나물 음식을 하려면 머리부터 아팠다. 도대체 어떻게 맛을 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산재한 레시피와 비법을 찾아 따라 했지만 원하는 맛은 아니었다. 그러다 고은정 선생님께 장을 배웠고 이제 제법 나물 맛을 낸다.


1. 양념을 단순화해야 한다. 특히 마늘과 참기름 사용엔 인색해야 한다.

2. 간장과 들기름을 잘 사용한다. 오늘 내가 한 나물 요리 네 가지에도 간장과 들기름 외에 별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다. 기본 볶음은 들기름으로 했고 고사리와 가지 고지 나물은 간장으로, 호박고지 나물은 간장과 새우젓, 건표고는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했고 파와 마늘은 다져서 최소로 사용했다.

3. 건나물을 요리할 땐 먼저 나물을 충분히 불리고 들기름으로 볶다 채수에 간장 간을 하여 붓고 팬의 뚜껑을 덮어 나물에 부드럽게 간이 배이도록 한다. 맛있는 간장만 있다면 다른 양념이 필요 없다.

4. 서두르면 안 된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조리해야 한다. 오늘의 나물 요리는 성공적였다.


이사 후 우리 집에 처음 온 민주씨는 내가 사는 모습이 좋다고 했고 마음은 더 넓어지고 막힘이 없다고 칭찬했다. 민주씨는 나보다 나이가 적지만 나보다 훨씬 의젓하고 어른스럽다. 나는 이런 민주씨에게 칭찬받는 것이 참 좋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해줄 수 있는 내가 기특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돌아가는 민주씨에게 오곡밥과 나물 그리고 간장과 된장 등을 선물했다.


내 친구는 크게 세 레벨로 분류된다. 내게 첫째, 수세미를 선물 받은 사람 둘째, 된장 등 먹거리를 선물 받은 사람 셋째, 간장을 선물 받은 사람. 민주씨는 오늘 이 셋을 한 번에 정복했다. 내 마음이 시켰다. 이렇게 나눠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대보름 음식을 올해도 나눠 먹었다. 올 한 해도 무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은 사과와 배, 봄동과 겉절이 해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