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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식당가엔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이 없다

2022.04.06_선진국의 조건

저녁 6시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국립극단의 <금조 이야기>를 보기로 했다. 이곳을 갈 땐 서울역에서 내려 서울역 대합실을 통과해 서부역 쪽으로 나가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지도 서비스는 서울역 15번 출구를 이용하라고 하지만 지하철역 서울역은 그야말로 미로에 가깝고 지하에서 계단을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나는 1번 출구로 나와서 대합실을 통과하는 방법을 택한다. 오늘은 공연 전에 저녁을 먹을 계획이 있어서 서울역 대합실로 들어왔다.


서울역 대합실 1, 2, 3층엔 패스트푸드를 비롯하여 음식점이 제법 많다. 당연히 음식 선택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1층과 2층엔 버거집과 국숫집이 있는데 채식 지향자인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고작 감자튀김이나 마른 빵 정도였고 들어갔다 그냥 나온 국숫집은 모든 음식을 고깃국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예 없었다. 3층 식당가는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지만 식당 이름이 대부분 고깃집였다. 배는 고프고 그렇다고 감자튀김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어 절망을 하며 서부역 쪽으로 나왔다. 15번 출구 쪽에 작은 국숫집이 하나 있었고 거기에 아보카도 김밥과 가쓰오부시로 국물을 낸 우동이 있어 그것을 선택했다.


그나마 내가 계란과 해산물을 먹어서 선택할 수 있는 음식였다. 만약 내가 해산물도 계란과 유제품도 먹지 않는다면 서울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어쩌면 물과 맨밥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소수자도 선택할 수 있는 환경 그런 환경이 되어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교통 약자가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이민자가 차별받지 않고 채식주의자도 자신의 식성을 이야기하고 존중받는 나라, 그런 나라였으면 좋겠다. 나라가 점점 후퇴하는 기분이다.


연극 <금조 이야기>는 4시간 짜리 공연였는데 배우들의 연기도 이야기도 아주 좋았다. 무엇보다 서사와 상징의 균형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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