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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맛의 이모저모

2022.04.18

윗동네 살 때 지근에 있던 게스트하우스 파란대문집 이정옥 대표가 ‘어머니께서 주말에 나물을 많이 채취하셨다’며 그 나물을 나눠주었다. 그중 머위는 데쳐서 무치고 일부는 쌈으로 먹었다. 머위는 봄의 대표 쓴 맛이다. 머위의 쓴맛이 입 안에 퍼지면 몸은 봄기운을 더 강렬하게 느끼는 것 같다. 봄의 화사함과 쓴 맛이 만나 내 입맛은 더 섬세해지는 기분이다. 짭짤한 씨앗 젓갈을 머위에 싸 먹었다. 쓴맛은 짠맛을 만나 부드러워졌다. 고기만 쌈을 싸 먹으란 법은 없다. 젓갈도 밥도 채소도 모두 쌈으로 싸서 먹을 수 있다. 채소를 채소로 쌈 싸 먹는 맛도 특별하다.


머위의 쓴맛으로 시작한 오늘은 가르침의 쓴맛을 보며 마무리되었다. 한 달에 네 차례 책 쓰기 워크숍을 진행한다. 일요일 한 반, 월요일 한 반이다. 워크숍을 마치면 온몸에 기운이 빠져 생각나는 것은 술뿐이다. 특히 나의 말이 수강생에게 닿지 않은 날은 더 하다. 오늘도 그랬다. 설명을 하면 듣고 나서는 다시 원점에 가 있었다. 그래서 같은 설명을 여러 번 하게 했다. 심지어 수업이 끝날 때 즈음엔 내가 한 말 모두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수강생들까지 같은 마음으로 힘을 보탰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수강생의 연령대가 높다 보니 종종 있는 일이다. 반면에 2주 간격으로 만나는데 그 사이 실력이 향상되어 남편과 나를 놀라게 하는 분들도 있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도 술이다. 햇빛 알레르기로 얼굴이 심하게 부어 엉망였지만 그래도 마셔야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제한이 풀린 첫날이라 그런지 밤 10시에도 구포국수 세 곳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 부부는 심야에 더 빛나는 집, 덴뿌라는 팔지 않는, 낮엔 밥집 밤엔 술집 <덴뿌라>에 가서 두부김치와 계란말이를 시켜 소주를 마셨다. 술을 마시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얘길 나눴다.


이럴 때 남편은 직장 동료가 된다. 당연하다. 책 쓰기 워크숍의 기획과 출판 관련은 내가 지도하고 글쓰기 부분은 남편이 지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런 걱정과 한숨이 모여 더 나은 워크숍을 만들어 간다고 믿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요즘은 삶도 쓰다. 써도 괜찮다. 단맛엔 중독이 있어도 쓴맛에 중독이 있단 소린 못 들었다. 그러니 내 삶이 쓴 맛에 중독될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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