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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한 봉지로 국도 끓이고 밥도 짓고

2022.05.16

이제 내 음주 얘기를 적는 일이 창피하다. 술을 좋아하는 대통령이 나오자 그는 필요하면 낮술도 마시라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술 권하는 사회는 좋지 않고 술 취해 벌이는 실수에 너그러워지는 것은 작은 범죄에 둔감해지는 사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제 난 술을 마셨고 숙취를 풀어야 했다. 숙취해소제나 관련 음식을 먹고 더 나아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도 술이 깰 때 먹고 싶은 음식은 있다. 오늘은 냉장고에 자리 잡고 있던 콩나물이다.


애초엔 콩나물 한 봉지로 국과 무침을 할 생각였다. 그런데 준비한 냄비에 콩나물 한 봉지가 다 들어가지 않아 국과 밥으로 바꿨다. 다시마 한 장 넣고 콩나물을 넣고 물을 부어 콩나물 국을 끓이며 양이 좀 많으면 무침도 해야지 했는데 무침을 할 정도는 아녔다.


콩나물 국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다시마만 넣어 낸 국물이 너무 맑았다. 콩나물국은 멸치국물이 정석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한 가지 맛에 익숙해졌나? 아, 오랜만에 콩나물국을 끓이며 마지막 간을 새우젓으로 했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마늘도 떨어져 생략했다. 오늘 콩나물국이 맹탕처럼 느껴진 이유를 알겠다. 그러나 이런 것을 잊지 않고 챙겼다 해도 옛날에 엄마가 끓여주던 맛이나 음식점의 맛과는 차이가 난다. 바로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서다. 익숙한 콩나물국의 한 수는 김혜자 씨가 ‘고향의 맛’이라고 광고한 멸치맛을 내는 조미료다. 그 맛이 그리워도 난 조미료를 넣지 않는다. 일종의 고집 같은 거다.


콩나물 밥은 콩나물을 따로 삶은 후 그 물로 밥물을 잡고 콩나물은 밥이 뜸 들 때 얹어야 맛있다. 그런데 리 모든 게 귀찮은 나는 쌀을 안칠 때 콩나물을 같이 넣었다. 콩나물 밥의 맛은 참기름이 넉넉히 들어간 양념장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콩나물 밥은 성공적였다.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고 오후엔 잠시 놀러 오신 제철음식학교 동문들과 마당에 앉아서 놀았다. 선물 주신 망개 열매로 오랜만에 물꽂이도 했고 저녁엔 책쓰기 워크숍도 열심히 진행했다. 돈 걱정 말고 별 걱정 없는 우리 부부의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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