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10만 원입니다.
독일에 온 지도 벌써 사흘째. 대충 토끼 한 마리 그려진 슬리퍼를 질질 끌며 마트로 향했다. 얼굴만 동양인일 뿐, 이젠 현지인이라 해도 믿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타국에 스며드는 일엔 늘 예상치 못한 고난이 따르는 법. 평화롭던 일상에 불쑥 낯선 사건이 끼어들었다. 바로 트램 1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된 사건.
베를린에서 기차로 한 시간, 종점에 닿으면 Frankfurt Oder라는 도시가 보인다. 이곳에 내가 반년 동안 다닐 비아드리나 대학이 위치해 있다. 구름은 느릿하게 흐르고 들꽃은 고요히 나부끼는, 고즈넉한 풍경의 작은 도시였다. 저도 도시라며 중심가에 '오더툼'이라 적힌 빌딩이 우뚝 서 있었지만, 베를린의 화려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숙사는 오더툼에서도 대중교통을 또 타야 할 만큼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입독 첫날밤, 세상과 단절된 채 텅 빈 방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핸드워시도, 음식도, 와이파이도 없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차도 끊겨 그야말로 바다 위 외딴섬이었다.
다음 날 아침, 모든 생필품을 털어오겠다는 야심 찬 각오로 오더툼으로 향했다. 정류장에 앉아 겨울의 끝자락을 바라보자, 트램 한 대가 신사처럼 느릿하게 다가왔다. 버스도 기차도 아닌 것이, 마치 소품샵에 진열된 아기자기한 장난감 같았다. 쭈뼛쭈뼛 트램에 올라 1회 탑승권을 사려 키오스크 앞에 섰다. 정체 모를 독일어와 씨름하다 겨우 카드를 꽂았지만, 결제는 실패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당황한 그때, 다음 정류장에서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올라탔다.
"탑승권 보여주세요."
세상에. 다들 주머니를 주섬주섬 훑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트램엔 탑승권을 태그 하는 기기도 없고 검표원이 상주하지도 않는다. 불시에 검표원이 탑승해 검사를 하는데, 무임승차를 하면 1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고 들었다. 만나기 어렵다던 그들을 하필 내가 탄 트램에서 마주친 것이다.
두 남성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범법 행위를 저지른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본 검표원은 '60유로'가 적힌 영수증을 건네주었다. 나는 독일의 교환학생이라며 사정을 호소했다. 이 상황이 부끄러워 영어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남성들은 그제야 서로를 바라보며 이해했다는 표정을 짓더니, 새로운 영수증을 떼어주었다. 학생이니 53유로나 깎아주겠다면서. 억울함이 복받쳤지만, 어설프게 "땡큐 소 머치"를 외치고 허둥지둥 트램에서 내렸다.
대중교통을 타는 일 하나도 이렇게 어려울 수 있다니. 당연하고 평온한 일상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간단한 주문조차 아이처럼 버벅거리는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독일에 적응하던 첫 일주일은 혼자 방에서 눈물을 흘릴 만큼 힘겨웠다. 하지만 낯선 거리를 매일 걷고, 친구들과 젤라또 가게를 찾아다니면서 나는 점차 독일에 스며들었다. 이제 자연스럽게 트램을 타고 마트에 다녀와 텅 빈 방을 채운다. 그렇게 나의 '동그라미'는 조금씩 커져갔다.
나의 동그라미 밖으로 나가는 건 늘 두려운 일이다.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위험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 그러나 느릿한 구름을 좇다 보면, 나의 동그라미는 점차 새로워졌다. 익숙해질 때까지 그저 걷고, 또 걷기. 영역을 넓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작은 시골 마을이 전부이던 나는, 이제 또 하나의 집을 얻었다. 매일 새로운 일상을 마주하며 나만의 언어를 다시 찾아간다. 나의 두 번째 안식처, 프랑크푸르트(오더)에서.